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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종교세계로의 나들이] 19 "생성 중인 그리스도교"

정재현의 신앙성찰

jungjaehyun
(Photo : ⓒ베리타스 DB)
▲정재현 연세대 교수(종교철학)

2.2. 포괄주의(5): 트뢸취

하지만 실제 역사가 그렇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트뢸취는 이제 이를 강하게 의식합니다. 종교사가 그렇게 엮일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트뢸취는 그리스도교의 다양성까지 나아갑니다. 역사에 좀 더 솔직해지니 그리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교도 통일성을 전제로 말할 수 없으며, 저마다 상이하고 독자적인 역사 원리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를 바라보는 앞의 방식을 트뢸취는 자기 스스로 깼습니다. 역사관도 전환되고 종교관도 전환됩니다: "나는 이 질문에 대해 나의 책에서 답변을 찾으려고 했다. 나는 먼저 물론 고대 기적 변증에로 돌아가려는 귀환은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했다"(89). 트뢸취에게 정신적 뿌리였던 고전형이상학이 표방하는 이성의 보편성으로부터 역사의 구체성에 주목하는 근대성으로의 전환을 겪으면서 개인 안에서 겪었던 시대의 교차가 또 다른 새로운 시대인 현대로의 전환을 맞으면서 한 인물 안에서 두 번째 전환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트뢸취에게서 근세로의 전환과 현대로의 전환이 연이어 일어났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이제 기적을 통한 변증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나서 더 나아가 나는 사실상 보편적인 것의 관념은 여기에서 우리들에게 아무것도 도움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교의 실제적인 보편성과 모든 종교 안에서의 그리스도교의 포괄성(Enthaltenheit)이 아니라 개별적인 관점으로부터 매우 잘 유래할 수 있는 타당성, 합법성(Gültigkeit)이다.(91)

그에게 그리스도교는 더 이상 '실제적인 보편성'을 지니고 있지도, '모든 종교에 대한 포괄성'을 지니고 있지도 않습니다. 즉, 그리스도교는 더 이상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그는 계속 생각을 밀고 갑니다: "모든 종교 안에는 합법적인 요소가 있지만 수천의 개별적이고도 일시적인 특수성(Besonderheit)과 혼합되어 있다는 것은 틀림없이 가능한 사실이다"(91).

보편성이 보편성으로만 모양새를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이고도 특수한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보편주의자들, 특별히 앞의 복음주의자들은 저 '일시적인 특수성'에서 보편으로 나아갑니다. 그들의 주장은 이천년 전 나사렛 예수라는 특수가 온 세계를 위한 보편적인 그리스도, 즉, 구세주가 된다는 틀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복음주의, 즉, 배타주의의 초점은 그리스도의 유일성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에 견주어 포괄주의의 초점은 그리스도교의 우월성에 맞춰져 있습니다. 유일성과 우월성이라는 성질이 다르다는 표면적인 사실 밑에 깔려있는, 더 중요한 것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각 유형이 무엇에 근거를 두고 있냐는 것입니다. 배타주의, 복음주의의 근거는 그리스도이고, 포괄주의의 근거는 교회, 아니 정확히 말해서, 그리스도교입니다. 트뢸취가 그리스도가 아닌 그리스도교를 끊임없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물론, 역사 때문입니다. 역사를 이제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사렛 예수의 역사성 문제도 중요하지만, 여기서는 실제로 그리스도교가 태동하고 인류문화사에서 엮어져 온 과정에서 인간사회에 대해 지녀온 위상과 함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는 역사의식이 종교 자체를 주목하게 하고, 그것도 역사의 견지에서 그리하게 했던 것입니다.

이에 비하자면 복음주의는 복음의 이름으로 초역사적 차원을 근간으로 한다고 주장합니다. 나사렛 예수의 역사성이야 재론의 여지가 없지만 이는 특수성을 구성하는 뿌리이고 이제 초역사적 보편성으로 나아가야 하는 구도에서 그리스도의 유일성이 가장 중요한 핵심이 된다는 것입니다. 복음주의에서 주어가 예수 그리스도라면 포괄주의에서 주어는 그리스도교입니다. 이 주어의 전환을 주목해야 합니다. 바로 여기에서 보편과 특수의 관계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포괄주의에서 말하는 특수란 어떤 의미인가요? 역사적으로 상이하고 독자적인 원리를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교가 공인된 보편성을 지닐 수 있지만 그저 보편성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개별적인 특수를 가지고 있음을 말합니다. 여기서 개별적 특수는 복음주의가 말하는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귀결시킬 나사렛 예수가 지닌 독특성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그리스도교가 역사적이고 개별적인 특수성을 포함하면서도 보편성을 주장할 수 있을까요? 트뢸취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봅시다. 당연하게도 포괄주의 입장에서 그는 다른 종교를 살펴보자고 제안합니다. 트뢸취는 유대교, 이슬람교, 조로아스터교, 불교 등과 그리스도교를 계속 비교합니다: "이에 반하여 그리스도교의 순수한 절대성은 모든 경우에 비추어보더라도 완전히 다른 종류의 것이다"(93). 그리고 이렇게 다시 그리스도교의 특수성을 말합니다.

그리스도교는 여하튼 간에 인간의 사유 활동과 수고스러운 개념작업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예언자들과 그들의 내적인 삶 속에서의 하느님의 압도적인 통치에서 유래한다. 때문에 그것은 삶이지 사유가 아니며 힘이지 사회질서가 아니다. 그리스도교의 순수절대성은 자기의 보편타당성을 양심의 핵심에서의 하느님의 자기계시(selbsterschleißung)에 힘입고 있는 것이지 사유와 논증의 올바름에 힘입고 있는 것이 아니다.(94)

트뢸취에 따르면 동양종교들이 사회질서나 사유로 틀지어져 있는 반면, 그리스도교는 삶이고 힘입니다. 동양종교를 비롯한 다른 종교들은 인간의 수행노력의 산물인 반면에, 그리스도교는 신의 계시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특수성을 포함하는 방법인데, 포함된 개별성이 신의 계시이니 가히 보편적이라는 것입니다. 소위 비교종교학의 비교대조표를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트뢸취는 그리스도교의 포괄적 보편성을 말합니다. 그리고는 이제 드디어 그의 핵심주장을 다음과 같이 내세웁니다.

하느님과 인간의 본질로부터 확증된 가장 내적인 보편타당성은 모든 종교로부터 그리스도교에 귀속된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다른 종교들 안에 포함되어 있는 타당성이라는 척도를 조용히 놔둘 수 있게 된다.

다른 종교도 그 눈으로 보면 나름대로 타당성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그리스도교에 귀속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을 위해 사회질서를 세우고 이를 위해 도덕을 개발하며 구체적 수행과 수양을 위해 종교가 형성된 것이 동양종교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세계종교들의 생성과정이라면 신의 계시는 그러한 타당성을 모두 포함함으로써 가장 크게 보편적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수정된 포괄주의의 공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종교들이 역사적 전개과정에 있기 때문에 다른 종교들이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는 또한 종교의 있을법한 계속적인 발전과 고차적인 발전의 문제를 방치할 수도 있다"(94). 포괄주의가 역사성을 토대로 하는 한에서 당연한 파생적 귀결이라 하겠습니다. 이렇듯이 포괄주의에서 우리는 역사라는 차원과 범주의 도움으로 종교의 생성과 발전, 심지어 소멸까지도 살피고 예견하며 대안을 강구할 수 있고 또 그리해야 할 이유도 확인하게 됩니다.

이제 그러한 통찰을 제시한 트뢸취에 의하면, 다른 종교들이 어느 정도 갖고 있는 인간의 본질로부터 확증된 내적인 보편타당성은 그리스도교에 귀속됩니다. 다시 한 번, 여기서 그리스도교는 모든 종교의 정점을 이룹니다. 그렇다고 해서 고전적 포괄주의처럼 그리스도교는 역사의 완성으로서 그저 정점에 머물러 고정되어 있다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이는 종교의 생명성을 위해서 뿐 아니라 포괄주의가 깔고 있는 역사성과도 모순되기 때문에 단호히 거부되어야 합니다. 앞서 말한 대로, 다른 종교들도 나름대로 타당성을 가지고서 발전할 수도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교도 "아직도 생성 중이며 항상 새로운 표현을 추구하는 종교"(94)라는 것입니다. 역사의 무게는 과연 엄청난 것이어서 그리스도교마저도 '생성 중'인 것으로 묘사하고 이해하게 합니다. 무슨 뜻인가요? 트뢸취가 초기에 그랬던 것처럼 아직도 '그리스도교의 절대성'이라는 고전적 향수에 젖어 있어서 이런 '생성'에 분노하게 되시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분노는 초역사라는 이름의 '몰역사'에서나 가능한 것입니다. 역사성에 솔직하지 않으면 자기에게서 역사가 시작되는 줄로 착각하고 자기가 세상의 중심인 줄로 오인하게 됩니다. 그러나 죄송하게도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역사는 이미 그렇게 복잡다단하게도 구체적으로 엮어져 왔고 그저 몇 가닥으로 추려내는 눈으로 우리가 역사라고 이름 붙여 볼 뿐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종교는 매번 토양에 좌우되며 종교가 발붙이고 있는 정신적이고 사회적이며 민족적인 토대에 따라 좌우된다"(95). 그러니 사실 배타주의냐 포괄주의냐 라는 논리적 대비는 시대배경의 근거에 따른 선택이기도 하지만 더 깊게는 시야와 차원 사이의 차이라는 문제로 심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아직도 생성 중인 그리스도교'를 말하는 트뢸취의 통찰은 차라리 고정된 몰역사적 절대성보다도 더욱 크고 넓고 깊게 세계를 포괄하는 가능성을 지닌 종교의 정체성 형성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됩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트뢸취는 "우리는 우리가 조망할 수 있는 주변일대에서 최고의 타당성은 그리스도교에 귀속된다는 사실로 만족할 수 있다"(94)고 선언합니다. 포괄주의를 표방하는 그의 입장을 압축하는 명제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은 어떻게 새겨질 수 있을까요? "하느님과 인간의 본질로부터 확증된 내적인 보편타당성이 그리스도교에 귀속된다"라는 위의 이야기를 토대로 하면서도 한층 더 포괄성의 수위를 높였습니다. 아니 과감하게 '최고'라는 표현을 동원했습니다. 앞서 개별적인 타당성을 포함하는 보편타당성의 근거로서 신의 자기계시를 언급하던 대목에서 주장했던 바와 같은 맥락에서의 표현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트뢸취의 이러한 명제를 그가 표방하는 포괄주의의 핵심적 선언으로 간주합니다.

주변일대에서 최고의 타당성은 그리스도교에 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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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화          주관     선험

우리는 트륄취의 말에서 포괄주의의 세 요소를 찾을 수 있습니다. 복음주의의 세 요소는 자체, 실체, 객관이었습니다. 이와 견주어 포괄주의는 자체가 아니라 대상, 실체가 아니라 선험, 객관이 아니라 주관입니다. 이 세 요소를 위의 문장에 대입해 봅시다. 포괄주의가 주장하는 그리스도교가 지니는 최고의 타당성은 주변 대상과의 비교에서 이루어집니다. 비교의 방식을 통한 최상급 설정입니다. 우리는 외국어문법에서 원급, 비교급, 최상급을 배워서 그것들이 마치 세 단계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 최상급은 비교급의 특수 형태입니다. 최상급이라는 것은 다른 것과의 비교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주변일대'라는 것은 '최고의 타당성'이라는 최고급을 설정하기 위한 비교대상입니다. 그런 방식으로 주변은 대상화됩니다. '주변일대'가 대상에 해당하는 것이라면 '최고'는 무엇일까요? 내가 보기에 최고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교가 과연 다른 종교인들이 보기에도 최고의 종교입니까? 그래서 '최고'라는 말은 아무래도 주관적입니다.

타당성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종교의 타당성을 조용히 놔둔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인간이 온갖 종교를 일일이 다 검토하고 분석할 수 없습니다. 이 세계에 있는 무수한 종교들 중에서 그 누구도 일부만 살필 수 있고 대부분은 그냥 놔둘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겪어보지 않고, 경험하지 않은 채 판단하니 선험적이라고 합니다. 일종의 가치판단이기 때문에 판단의 대상이 되는 모든 것을 다 겪어보고 경험해야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보편적 가치기준을 표방하고서는 이에 비추어 개별적 사례를 모두 다 일일이 살피지 않더라도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판단할 수 있는 틀이 미리 주어져 있다는 것이지요. 선험이란 그런 것입니다.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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