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종교비판에서 신앙성찰로(13): 포이어바흐의 무신론적 통찰을 중심으로

글 · 파울로 연세대학교 신학박사(Ph. D.)

6. 종교비판에서 신앙성찰로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인간이 "무한한 의식의 자기 대상화"를 통해 신인 관계를 설정하고 있음을 포이어바흐의 투사의 메커니즘과 그 불가피성을 통해 확인했다. 인간을 의식으로 규정한 포이어바흐는 인간이 자기 의식을 투사한 다른 인격으로서의 신이 실은 자기 자신일 뿐인데 이 관계를 마치 신인 관계로 착각하는 것은 인간의 자기중심적이면서 자기무의식적인 성향 때문이라는 예리한 분석까지 내놓았다. 이른 바, 주술 관계 전복을 통해 주어가 술어에 종속되고 술어가 술어 자리를 떠나지 않으면서 주어를 주무르고 주어 위에 군림하고 있기 때문에 망각이 일어나고 있음을 밝힌 것이다.

또 인간의 의식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 즉 지성, 의지, 감정 차원으로 투사의 준거가 옮겨감에 따라 각 차원에서 인간의 자기중심성이 점점 강화되는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음도 살폈다. 이러한 자기중심성의 심각한 문제는 자기기만을 통해 허위의식에 빠지게 한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불가피한 투사의 매커니즘 속에서 자기 자신을 의식하는 것에 불과한데 그것을 마치 어떤 다른 대상 자체를 파악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믿고 싶은 신을 있는 그대로의 신으로 착각하게 되면 자기 마음대로 그려낸 신을 신 자체로 여김으로써 인간 소외와 억압을 피할 길이 없다.

신인 관계에서 이쪽, 즉 인간편에서 자기중심성이 강화되는 이유로 포이어바흐는 유사성을 제시했다. 인간과 신의 근친적인 관계를 나타내는 이 유사성은 "하나님이 자기 형상을 따라 사람을 지으셨다"는 성서의 가르침을 통해 보장되고 강화되었다. 소위, 신인동형설의 기초가 놓여진 것인데 결국 신인 관계를 인격적이라고 보는 태도는 동물이나 자연과는 신분적으로 다른 특권의식에 차 있는 인간중심주의적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 장에서는 먼저 포이어바흐의 종교 비판 준거에 입각해 전통적인 신인 관계, 특히 인격주의적 신관이 일으키는 소외와 억압 구조를 살피고 신과 인간의 차원에서 동시적으로 자유와 해방의 길을 모색한다. 이어 오늘날 한국교회에 여전히 똬리를 틀고 있는 종교적 환상이자 우상인 이념주의, 문자주의, 교회주의를 파괴하는 실마리로서 포이어바흐가 제시한 무신론적 통찰을 주목해 보고자 한다.

6.1 인간중심적인 인격주의적 신관을 넘어서

인간중심주의적 관점이 유지되는 한 신은 인간의 자기 대상화를 통해 인격적인 신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인간과 신의 유사성을 토대로 한 인격주의적 신관이 고착화되는 것이다. 이러한 인격주의적 신관이 문제인 것은 자기가 믿고 싶은 인격적인 신을 신 자체로 여기도록 자기기만적 허위의식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보고 싶고 믿고 싶은 것만을 보면서 세계를 또 신을 구성하고 있기에 신인 관계에 있어서 인간 자신의 믿음에서 동떨어진 이질적인 자연의 속성, 즉 맹목적 필연성이나 비정함이 드러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인간의 자기 대상화의 과정에서 자연이 끼어드는 것은 신에 대한 모름을 수반하는 것인데 이는 '앎'의 확실성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에 배치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격적 신관을 두고 길희성은 인간의 이기적 욕망과 편견을 쉽게 투사하게 하는 조잡한 신관이라고 비판한다. 신이 자기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지은게 아니라 인간이 자기가 생겨먹은 대로 신을 투영하고 있다는 포이어바흐의 비판이 여전히 유효함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앎'의 확신 강박에 따라 구성된 우상화된 신에 의한 인간 소외와 억압은 예견된 일이었다. 자기중심적으로 그려진 신을 신 자체로 여기는 한 정죄와 기만의 늪에서 헤어나올 수 없겠기 때문이다. 의지의 차원에서 투사된 도덕의 신이 인간을 정죄함으로써 죄의식을 강화시키는 등 인간 억압으로 작용했다는 점은 그 좋은 예이다. 결국 인간 소외와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은 고착화된 인격주의적 신관으로부터의 탈출을 도모하도록 우리를 이끈다. 그렇다면 인간의 기대와 관심 그리고 목적 등을 내포하는 인간중심적 관점에서 벗어난 신관의 구성이 가능할까?

아울러 개인의 관심사나 욕망에 부응하지 않는 신이 실용성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을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길희성은 그러나 오늘날 우리 현대인이 필요로 하는 신은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전능의 신이 아니라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를 가르쳐 주는 무욕의 신이며 인간의 끝없는 자기 확장을 부추기는 신이 아니라 조용한 관조와 자기성찰을 요구하는 신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의 무한한 자기 확장 욕망이 도리어 인류 파멸의 자충수가 될 수 있음을 코로나 팬데믹 사건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욕망으로부터의 억압에서 인간이 자유하기 위해서라도 하나님을 인간의 끝없는 자기 욕망의 덫으로부터 풀어주자는 얘기다. 그러한 덫에 걸린 하나님은 그저 인간이 바라고 소망하는 하나님일 줄 모르나 인간 투사 밖에 존재하는 '있는 그대로의 하나님'과는 분명 거리가 먼 이름 뿐인 신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정재현은 인간은 누구나 '내가 믿고 싶은 대로 믿고 있는 하나님'에서 출발한다고 분명히 한다. 문제는 그런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의 하나님'으로 믿고 따른다는 데 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부르짖는 하나님은 사실상 이름만 같을 뿐 우리 개개인의 원하는 방식에 따라 믿고 있는 대상에 불과하고 따라서 자기 우상에 다름 아니라는 지적이다. 각자가 그려내는 신이 제각각이기에 신의 이름은 많을수도 또 아예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의 필요와 관심과 요청으로 이름 붙여진 신에서 해방되어야 함이 마땅한데 여기서 우리가 붙들어야 할 지점이 하나님을 놓아주기는 놓아주는데 어떤 방식으로 놓아주느냐 하는 문제이다. 그것은 단연 자기의 의식을 대상화 한 자기 우상화된 신의 이름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함이 마땅하다.

적어도 '내가 믿고 싶은 대로 믿고 있는 하나님'이란 우상을 타파할 적에 성서의 맥락에 따른 '내가 맞딱드린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이며 성서가 가리키는 '있는 그대로의 하나님'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지름길이 열리는 것이다. 성서가 가리키는 하나님의 모습에서 힐끗힐끗 드러나는 것은 다름 아닌 우상 파괴자로서의 하나님이다. 자기의 생명 같은 아들을 자기 손으로 죽이라는 명령을 받은 아브라함의 이삭 번제 사건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워 자기 탐심을 채우려는 성전 안의 장사치들과 그들 뒤에서 교권과 금력을 남용하는 종교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한 예수의 성전 정화 사건에서도, 또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추대하려는 백성들을 뒤로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의 십자가 사건에서도 한결 같이 성서가 저마다 한 방향으로 가리키고 있는 것은 인간의 우상파괴자로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모습이다. 이러한 우상 파괴자로서의 하나님이야말로 우리가 정말로 맞닥뜨려야 할 이른 바, '있는 그대로의' 하나님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저쪽에서 우상파괴자로 나타난다면 이쪽에서의 신앙이 우상파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종교가 우상숭배라면 신앙은 우상파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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