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 별거 아니었네”는 사람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실상 그렇지 않을 수 있음을 알려주는 글들로 채워져 있다. 인간의 한계를 깨닫게 하는 글들이다. “우리집 고양이는 예수를 믿지 않는다”는 우리의 생각보다 크신 하나님을 보여주는 글들이 담겨있다. 하나님에 대한 가볍고, 좁은 생각들을 넓혀주는 글들이다. “사람은 어떻게 악마가 되는가”는 인간이 성찰 없이 살아갈 때, 빠지게 되는 오류나 드러나는 악마성에 대한 글들이 담겨있다.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을 해볼 수 있게 해준다.
"대장간을 기억하십니까? 낫, 호미, 망치, 집게와 같은 도구들과 풀무 화덕이 있는 곳입니다. 쇳물을 주형에 쏟아 부어 농기구 모형으로 만들거나, 둔탁해진 낫이나 호미를 풀무에 달궈 망치로 내려쳐 새롭게 모양을 만드는 곳입니다. 새로운 해 첫 날에 우리는 다짐합니다.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면서 사는 사람으로 만들어져 가기를 기도합니다. 어떻게?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한 순간에 이뤄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려면 하나님의 대장간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곳은 어떤 곳인가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원재료로 삼아 작업하시는 공간입니다. 새로운 모습과 색상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만드시는 곳입니다. 새해를 우리의 '성화의 해'로 삼으면 어떨까요?"
"죄는 두 가지가 있다. 명료하게 생명에게 해악을 끼치는 행위로서의 죄, 그리고 다른 이들이 무고한 이의 생명을 해하도록 방관하는 죄가 있다. 상당수의 기독교인들은 죄란 무엇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배운다. 도둑질 하지 않고, 간음하지 않고, 살인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착한 사람으로 남아 있는 것이라고 여긴다. 이런 가르침은 틀린 것이다. 악을 방관하는 죄를 짓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착하게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사회악이 독버섯처럼 자란다."
"디오니시우스는 1세기 바울이 개종시킨 그리스인 디오니시우스와 다른 사람이라는 뜻에서의 보통 '위僞 디오니시우스'라 불린다. 여기서는 그냥 디오니시우스라 부르기로 한다. 그의 삶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지만, 그가 남긴 『신비신학Mystical Theology』 『신의 이름Divine Names』 『천상의 위계Celestial Hierarchy』 『교회의 위계Ecclesiastical Hierarchy』 등 네 권의 책과 약간의 편지서들은 그리스도교 신비 전통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특히 겨우 5장으로 이루어진 짧은 책 『신비신학』은 다른 어느 신학서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그분에게 탄생이란 축하할만한 일이 못되었다. 영원한 생명이신 그분이, 한낯 육신에 갇힌 인생으로 오신 것이 그 자신에게 무슨 축하할 일이었던가. 본래 하나님의 본체이신 분이 종의 형상을 입은 것이 그에게 정말 축하할 일이었던가.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드려요"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거리감, 마치 예수가 종교가 되어버리는 듯한 막연한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구약의 종교의식 준수에 관한 규범은 매우 엄격하고 오늘의 우리 관습과 생활에서 보면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이 있다. 본 구절도 그 중 하나다. 금한 이유는 무엇일까?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백종원 표 요리법이라도 알려주려는 것인가? 그 전에는 이런 요리 풍습이 있었다는 말이겠지. 아니면 다른 나라에서 그런 풍습이 있다든가.... 구약에는 이방 나라의 풍습이나 종교행위를 금하는 규범들이 많으니까."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할 한국교회가 많은 이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있습니다. 아름답고 좋은 교회들이 많이 있는 것을 알지만 성직자의 탐욕과 근본주의자의 행패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근본주의자들은 매우 성서적인 것 같지만 필연적으로 목사의 자의(恣意)가 넘쳐서 성서를 취사선택, 왜곡하고, 시대착오적인 신화와 미신을 유통하며, 자칭 신을 대리하는 것같이 선전하며 행세합니다. 죄 많은 인간이 하나님의 권위와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신자에게 사랑보다는 증오와 혐오를 가르치고 이 수단으로 자기 집단을 지키며 생각이 다른 이를 악마화 하며 억압합니다."- 박충구 전 감신대 교수
의 저자 존 쉘비 스퐁 신부는 단언합니다. "교회에서 성경 문자주의를 분명히 배격하기 않으면 그것은...그리스도교 신앙을 죽이고 말 것이다." 스퐁 신부는 오늘날의 기독교를 개혁해야 하는 근본 이유가 '경험과 설명' 분리되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예를 들어 간질이라는 병은 성경이 쓰인 1세기에는 '귀신이 들린 것'으로 설명했지만 21세기에는 이런 설명이 수용되기 어렵고 차라리 '뇌세포의 전기적 화학작용'의 문제로 설명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것 처럼 말이지요. "따라서 그리스도교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점점 더 믿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존 쉘비 스퐁
"'망조 들었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하는 짓이나 어떤 분위기를 보니까 곧 망할 것 같다는 의미죠. 교회가 망조 들어가는 모습이 하나 있습니다. 교회 식구들이나 목회자들에게 가정을 개방하지 않는 것입니다. 목회를 하다 보니, 요즘은 결혼이나 가정이 그 자체로 우상이 된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가정이나 결혼을 소중하게 여기는 일을 누가 욕하겠습니까만 소중함의 가치를 넘어 가정을 통해 자신들의 이기심을 충족하고 자기 사생활의 보존을 극대화하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대단히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몇몇 종교인들의 선동과 정권욕에 취한 정치인의 거짓 언어와 행태를 보며, 떠오르는 27년 전 한국교회의 부끄러운 옛 일을 기억한다. 최근 한국교회가 이상한 엉뚱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광적이고, 공격적이고, 과격하고, 예의가 없고, 무례하며, 매우 정치적이고, 극단적인 전에 없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일부이다. 그런데도 이런 현상에 상당한 사람들이 내심 공감한다는 점이다."
2001년 한 시사주간지는 이라는 제목의 표지기사에서 "성당의 우렁찬 종소리와 미사, 교회에서 새벽마다 울려퍼지는 통곡의 기도, 사찰의 목탁소리.... 지금 여기, 우리 종교는 과연 세상 속의 '빛과 소금'인가."라고 썼습니다. 20년 가까이 지났지만 기사의 의미가 더욱 또렷하게 다가옵니다. 또 신자는 세상에서 빛과 소금처럼 살아야 한다는 예수의 가르침이 폐부를 찌릅니다.
"가장 많이 속이고 속는 일은 어떤 일일까요? 종교입니다. 우리나라에 사이비 종교는 얼마나 많이 있을까요? 그 수를 헤아리기가 어렵습니다. 교세가 상당한 기성종교 안에서도 윤리적이지 못하고, 도덕적인 헤이가 가득한 종교인들의 수는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사람을 속이는 데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성전입니다. 성전에서 행해지는 장엄한 의식과 화려하고 현란한 연출입니다. 또한 능력이 있는 사제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위엄을 주기 위해서 학력을 세탁하고, 거짓으로 사람을 속이는 경우는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그 거짓을 덮기 위해서 또 다른 거짓을 말을 합니다."
"성상파괴는 기독교에 어마어마한 손실을 가져왔다. 가장 중요한 소실은 형언할 수 없는 성상파괴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수백 년 동안 그리스도인들에게 말을 걸었던 형상 언어도 파괴되었다는 사실이다. 개신교회는 말씀이 형상을 물리치고 말씀이 교회와 신앙을 독점했다. 역사적 성서비판과 매스미디어의 언어의 인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개신교의 성경주의는 강화되었다. 말씀만을 강조하는 배타적인 자세를 말씀에 대한 과장된 우상숭배로 여기지 않고 있으며, 엄격한 말씀독재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정재영 교수가 쓴 "강요된 청빈"이란 책의 제목은 나에게 하는 말과 같았다. 내가 속해 있는 시찰회의 목회자 중 대부분이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았다. 노회 차원에서 좀 도와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고, 그렇게 말하고 있는 공교회로서의 회복이 가난한 목회자들에게 손길이 이어졌으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너무나도 드문 일이었다. "강요된 청빈"의 저자인 정재영 교수는 이렇게 목회자가 가난에 시달리는 것은 미래를 내다보지 않은 채, 목회자만 배출한 한국교회의 실패라고 말을 한다. 개교회 위주의 생각도 큰 영향을 주었다고 말을 한다. 내가 속한 교회만 잘되면 된다고 하는 식의 자기중심적 사고를 가지고 교회끼리 머리 수 경쟁을 하듯 양적 성장을 추구하는 시대 속에서 뒤처진 목회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경제적인 어려움이 직면하고 만다."
"'번 아웃(burn out)'은 '불에 타서 없어진다.'는 뜻으로 미국의 정신분석가인 프로이덴버거(Herbert Freudenberger)는 이라는 논문에서 '다른 사람을 돕는 직업을 가진 사람' '높은 이상을 가진 사람'이 지치고 기운이 다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상태를 설명하는 의미로 처음 사용했습니다. 기운이 다 빠져 없어짐을 의미하는 탈진(脫盡)으로도 번역되는 '번 아웃'은 우리 사회에서 공평과 정의, 나눔과 평화 등 사회개혁과 공익을 위해 헌신해 온 활동가라면 한 번 쯤은 스스로 경험하거나 이로 인해 고통당하는 동료의 모습을 지켜보았을 것입니다."
종교비판에서 신앙성찰로(19): 포이어바흐의 무신론적 통찰을 중심으로인간을 가리켜 우상 공장이라 하지 않았는가? 그만큼 우상의 마력은 인간 삶 전체에 걸쳐 뿌리 내려 막강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우상파괴가 말처럼 쉽지 않은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