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종교비판에서 신앙성찰로(19): 포이어바흐의 무신론적 통찰을 중심으로

글 · 파울로 연세대학교 신학박사(Ph. D.)

덧붙이는 글

칼빈은 인간을 가리켜 우상 공장이라 말했다. 그만큼 우상은 인간 삶 전체에 걸쳐 뿌리 내려 막강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우상파괴가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은 우상파괴는 곧 안정이 아닌 혼돈을 주기 때문이다. 실존의 허무와 소외 그리고 불안, 절망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인간이 불들고 늘어지고 있던 우상을 놓으라는 것은 다시 혼돈과 모순으로 빠지는 모험이기에 선뜻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다. 모세가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을 받으러 간 사이 불안을 견디지 못해 아론으로 하여금 금송아지를 만들게 하고 우상숭배 행위를 벌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라. 안정을 추구하는 인간의 우상에 대한 집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하지만 짝퉁 신, 가짜 신에 불과한 우상 숭배를 포기하지 않는 한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을 숭배한 이스라엘 백성처럼 우상의 노예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상의 노예는 현실 왜곡과 기만을 피할 길이 없다. 여기서 포이어바흐의 무신론적 통찰이 주는 지혜는 우상 그리고 우상으로부터 나오는 안정이 실상 우상 자체로부터 나오는 게 아니라 인간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가상이고 환상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인간과 신의 관계가 그저 자기와 자기와의 관계임을 폭로한 것이다. 인간의 자기 우상화 경향의 폐부를 찌르는 통찰이 아닐 수 없다. 우상타파 문제의 심각성은 자기가 믿고 있는 우상이 우상인지 스스로 알아채지 못한다는 데 있다. 내가 믿는 하나님 조차 의심을 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 것은 나의 앎의 틀에 의해 개념화가 불가피한 하나님에 대한 앎의 꼴이 하나님 자체, 이른 바 있는 그대로의 하나님과 동일할 수 없고 동일해서도 안되기 때문이다.

포이어바흐는 신 의식이 인간 자기 의식을 대상화 한 것에 불과한데 이러한 투사 메커니즘을 작동하게 하는 방아쇠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다름아닌 인간의 배타적 자기 긍정 욕망임을 분명히 했다. 다시 말해 타자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자기 욕망을 충족하는 본능이 투사를 일으키는 방아쇠 역할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그 방아쇠를 제거하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하면 투사에 의해 만들어진 가상이자 환상에 불과한 우상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음을 암시해 준다.

포이어바흐에 따르면 특히 이러한 배타적 자기 긍정은 신앙과 사랑의 모순을 낳는다. 당파성으로 인해 사랑을 표방하는 그리스도교가 당파에 속하지 않은, 이른 바 타종교인들에 대한 증오 감정을 합리화 하고 일반화 하여 사랑의 종교가 아닌 미움의 종교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포이어바흐의 지적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 대목에서 포이어바흐는 배타적 자기 긍정 욕망이 똬리를 틀고 있는 당파성을 극복하고 온전한 사랑의 정신을 구현하려면 차라리 종교가 아닌, 비종교화를 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사랑의 비종교화는 포이어바흐의 말대로 신앙과 사랑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상을 만들어 내는 투사 메커니즘의 작동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장치 역할도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사랑의 비종교화가 내포하고 있는 포괄적 타자 긍정 때문이다. 이는 당파를 떠나 타자를 포괄적으로 인정하는 긍정이 사랑의 비종교화를 가능하게 해주는 가능 조건이며 동시에 투사 메커니즘의 방아쇠 역할을 하는 배타적 자기 긍정을 대체할 수 요소라는 말이기도 하다.

포괄적 타자 긍정은 타자를 인정하지 않고 배타적 자기 긍정에 기인해 이기적인 욕망을 투사하는 투사 메커니즘을 주춤거리게 만들고 타자의 다름들과의 충돌 앞에서 자기 부정을 통한 타자 수용의 범위를 넓혀주도록 이끈다. 포괄적 타자 긍정을 하면 할수록 배타적 자기 긍정에 의한 투사는 점차적으로 줄어들 것이며 지평선 위의 자기 부정의 한계선은 점점 뒤로 밀려나게 될 것이다. 종교가 배타적 자기 긍정이라면 신앙은 포괄적 타자 긍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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