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12,33-34: 너희는 있는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해어지지 않는 돈지갑을 만들고 축나지 않는 재물 창고를 하늘에 마련하여라. 거기에는 도둑이 들거나 좀먹는 일이 없다.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박태식 박사 |
우리나라에서는 점잖은 사람일수록 돈 이야기를 안 꺼내는 것이 법도이다. 왠지 천한 것에나 신경 쓰는 세속적인 인간이라는 인상을 주어 체면이 구겨질까봐 그런 모양이다. 그런데 우리들의 예수님은 아무 거리낌 없이 재물에 대해 말씀한다(루가 10,7;12,13-21;16,1-15;20,9-19.20-26). 물론 이는 예수님이 점잖지 못하다는 뜻이 아니라 인간의 삶에 그만큼 구체적인 관심을 두셨다는 뜻일 게다.
예수님은 제발 좀 인색하게 굴지 말고 가난한 자를 도우라고 한다. ‘빈자의 복음’, ‘소외자의 복음’이라는 별명이 붙은 루가복음다운 내용이다. 그런데 그 다음 말씀이 알쏭달쏭하다. 재물을 모두 내 주라더니, 이번에는 ‘도둑이 들지 않고 재물이 좀먹지 않게 재물창고를 하늘에 마련해 두라’고 한다. 그러더니 뜬금없이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는 말씀으로 마무리된다(루가 12,33-34). 말씀의 뜻을 꼼꼼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예수님은 인간이 재물에 끌린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재물을 탐내는 속성은 여간해서 떨치기 힘들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따라서 ‘재물욕심을 없애라.’는 불가능한 요구보다 그 욕심을 그대로 유지하되, 하늘의 쌓아 둔 재산을 불리는 데 사용하라고 말씀하신다. 이를 두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경제 규칙이라 불러도 무방할 법하다.
하늘의 재산을 불리는 방법은 간단하다.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마르 10,21). 예수의 요구를 거부한 부자 청년은 대대손손 우스개 감이 되었고, 자캐오는 그 요구를 받아들여 이상적인 그리스도인의 모범이 되었다.
경제가 어렵다고 야단들이다. 그러니 요즘 같은 시절에는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한 푼이라도 더 벌 궁리를 해야 마땅하다. 한가하게 예수님의 경제관이 어쩌구저쩌구 하고 있으면 세상 물정 모르는 속편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 당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던 참에 ‘전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라’는 요구까지 한다면? 아마 미친 사람 취급받을 것이다.
누가 12,33-34에서는 우선 예수님의 깊이 있는 인간이해가 돋보인다. 인간의 나약한 실존을 그대로 인정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지녀야 할 경제규칙도 더불어 알 수 있다. 그 규칙을 잘 지키면 도둑처럼 들이닥칠 하느님의 날에 큰 칭찬을 받을 것이다(루가 12,35-40). 크게 나누어주면 하늘 창고에 크게 쌓인다. 알고 보면 간단한 규칙이다.
사도행전의 작가 누가는 예루살렘 모교회에서 이상적인 ‘소유공동체’를 이루어냈으니 우리 역시 본받아야 한다는 충고를 한다. 그러면서도 교회를 꾸려나가는 데 경제적인 어려움을 절감했기에 자발적인 헌금을 유도하는 방법을 어쩔 수 없이 고안해 냈다. 사도 바울은 돈 문제에 있어 결벽증이다 싶을 정도로 냉정한 사람이었다. 자신이 보수를 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2고린 11,7-11) 예루살렘에 보내는 의연금을 거두어 전달할 때도 아주 믿음직한 사람들만 골라 보냈을 정도이다(2고린 8,16-24; 9,1-5). 그렇다고 해서 바울로 역시 ‘제 뱃속을 채운다’는 괴소문을 피해갈 수 없었다(2고린 12,16-18). 그저 돈이 원수였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바울이나 누가에 비해 예수는 무척 대범한 편이다. 부담 없이, 복음 전한 대가를 주는 대로 받아 넣고(마태 10,10=루가 10,7), 있으면 있는 대로 또한 없으면 없는 대로 살면 되는 것이다(마태 6,25-33). 제자들이 전도여행을 떠날 때 예수가 한 당부(루가 9,3-6, 이른바 ‘여장규칙’)에도 그런 생각이 잘 나타난다. 예수가 재물에 대해 그렇게 너그러울 수 있었던 이유는 딱 한가지다. 평소 그분의 언행에서 미루어보건 데, 세상 만사가 하느님 앞에서 떳떳하면 그뿐인 것이다. 인간의 눈은 속일 수 있다. 그러나 머리카락 하나도 세어놓고 계시는(마태 10,30) 하느님의 눈을 속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무 상관없다. 얼마든지 받아라! 하지만 하느님 앞에서만은 떳떳해야 한다. 바울로나 루가와 비교할 때 예수의 스케일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다.
글/박태식 박사(서강대, 가톨릭대, 성공회대 신학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