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소래 마을에 심겨진 씨앗(17)Dec 02, 2011 03:31 PM KST

김필례는 1908년도에 드디어 일본 유학을 가게 되었다. 오빠 김필순은 당시 최신 스타일의 양장의상을 사주었다. 여지껏 한복만 입고 자라난 김필례로서는 참으로 황홀한 호사였다. 이처럼 김필순은 일찍이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하여 어린 여동생을 사랑하고 돌보아 주었던 것이다. 일본으로 떠나는 날 어머니가 서울역으로 전송하러 나왔다. 그는 김필례의 두 손을 잡고 당부하였다

[김경재] 한류(韓流)에 대한 문화신학적 조명(2)

[김경재] 한류(韓流)에 대한 문화신학적 조명(2)Dec 02, 2011 08:26 AM KST

한류가 발생하고 진행되어가는 이유는 여러 가지 복합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주요한 동기들 즉 국가 문화정책과 문화산업적 요인, 한국민의 문화적 능력과 집약적이고도 중층적인 근현대 사회변동 경험에서 축적된 역동적 역사체험, 전자정보 기술혁명이 가져다준 미디아의 위력, 그리고 쏘련 사회주의 몰락이후 전개되어가고 있는 지구촌의 자본주의적 세계화라고 부르는 경제질서가 복합적 원인으로서 작용했다.

[김경재] 한류(韓流)에 대한 문화신학적 조명(1)

[김경재] 한류(韓流)에 대한 문화신학적 조명(1)Nov 30, 2011 07:18 AM KST

2011년 늦가을 11월, 4회에 걸쳐 논의되고 있는 한국문화신학회와 연대기독교문화연구소 공동주최의 심포지엄 주제는 ‘한류와 정의’ 이다. 이 큰 주제를 기독교문화신학의 관점에서 고찰하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필자는 심포지엄의 주제에 대하여 ‘문화신학’의 과점에서 접근하는 것이므로 ‘문화신학’이란 무엇을 어떻게 하려는 신학의 한 전문분야인가 ‘한류’와의 관련해서 잠시 먼저 언급할 필요가 있다

[정재현] 믿음과 삶(5)

[정재현] 믿음과 삶(5)Nov 21, 2011 12:31 AM KST

‘왜 믿는가?’를 물으면서 우리는 믿음과 구원 사이에 깔려 있는 너무도 당연한 듯이 보였던 고리를 끊어내어야 한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그 고리야말로 믿음을 결국 구원에 대한 욕망으로 전락시키는 족쇄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로 믿음이 ‘깨달음’이나 ‘갈고 닦음’을 거부해 왔기 때문이다.

[정재현] 믿음과 삶(4)

[정재현] 믿음과 삶(4) Nov 19, 2011 07:05 AM KST

그렇다면 우리는 왜 믿는가? 대답하려면 다소 당혹스러울 수도 있지만 이 물음은 사실상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의 뿌리에 깔려 있는 물음일 뿐 아니라 거슬러 ‘무엇을 믿는가?’보다 앞서 물어져야 할 물음이다. ‘왜’가 그럴 듯하게 깔리지 않고서야 무엇이 ‘무엇’이든 별 뜻을 지니지 않겠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사에서 ‘왜 믿는가?’라는 물음은 믿음의 뿌리에 대한 불경스러운 시비라는 판단과 함께 신성모독의 죄명이 뒤집어씌워진 채 억눌려져 왔다. “믿는다면 무조건 믿을 일이지 어디서 감히 ‘절대적인 믿음’에 대해 ‘왜’를 묻는가?”라는 불호령과 함께!

[이충범의 길에서][10][겁나는 태양, 겁나는 동학군]

[이충범의 길에서][10][겁나는 태양, 겁나는 동학군]Nov 18, 2011 07:16 AM KST

이 세상에서 이렇게 달콤한 잠이 있을 수 있을까? 이른 아침에 눈을 뜬 것은 알람도, 모닝콜도 아니었다. 그 날 아침 나는 방안으로 가득 들어오는 강렬한 아침의 해님과 창 밖에서 지저귀는 새 소리에 잠이 깼다. 참 그리웠던 기상의 순간이다. 그리고 잊고 있었던 아침 모습이었다. 정말 오랜 동안 나는 옆 사람의 뒤척임, 알람소리, 위층 이웃의 샤워하는 물소리나 러닝머신

[정재현] 믿음과 삶(3)

[정재현] 믿음과 삶(3) Nov 15, 2011 08:33 AM KST

그렇다면 과연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실 이 물음은 앞서 살폈던 ‘무엇을 믿는가?’라는 물음과는 정반대로 막상 대답을 하려면 너무도 막연하다. 믿음과 ‘무엇’을 이으면서 나올 수 있는 두 개의 물음들이 이토록 대조적인 형편에 처하게 되는 것이 꽤 오묘한 일이지만 이는 결국 우리 자신을 되돌아 볼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정재현] 믿음과 삶(2)

[정재현] 믿음과 삶(2)Nov 14, 2011 07:28 AM KST

그런데 사실상 이 물음은 너무 많이 물어왔다. 아니 솔직히 말해 이 물음은 묻지도 않고 이에 대한 대답들만을 떠벌려왔다. 그것도 엄청나게 많이! 온갖 교리들이 대체로 이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등장했었으니 이 물음에 대해 대답을 들먹거려가면서 더 곱씹을 이유는 별로 없어 보인다. 다만 교리라 하고 보니 중국집 메뉴판에도 순서가 있거늘 교리에도 마땅한 순서가 있을 터인즉, 교리는 과연 신론으로부터

[정재현] 믿음과 삶(1)

[정재현] 믿음과 삶(1)Nov 12, 2011 12:21 AM KST

인간에게 종교란 무엇인가? 물어 마땅한 물음이지만 대답이 그리 간단하지는 않다. 게다가 ‘종교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앞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물어야 오히려 앞선 물음에 대한 대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통찰도 주목해 마땅하다. 종교의 연원이 죽음을 넘어서려는 인간의 생존본능과 떼어놓을 수 없으니 죽음이 없었다면 종교도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을 부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소래 마을에 심겨진 씨앗(16)Nov 09, 2011 02:22 PM KST

오늘날의 [정신여자중고등학교]의 근원은 경성(京城)의 연동교회에서 시작한 [연동여학교]이다. 이 학교는 미국 북장로교에서 파송한 여선교사 애니 엘러스(Annie J. Ellers)가 설립하였다. 그분은 여의사로써 당시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외국 공사관원들을 치료해 주면서, 명성황후의 주치의 노릇까지 하였던 것이다. 그녀는 처음에 정동(貞洞)에서 시작하여 [정동여학당]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하였으나 몇 대 후의 교장 도티((S. B. Doty)때에 당시 [연못골]이라고 부르던 연지동(蓮池洞)으로 이전하여 [연동여학교]로 바뀌었다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77)(마지막편)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77)(마지막편)Nov 09, 2011 01:51 PM KST

에큐메니칼(ecumenical)이란 말은 ‘우주’ 또는 ‘세계’를 뜻하는 희랍어 원어 ‘oikoumene’에서 온 것이어서 ‘전 세계적인 것’이란 뜻인데, 세계의 모든 교회를 한 집안 권속으로 삼는 운동을 교회의 에큐메니칼 운동이라고 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일찍이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신도는 “하나님의 온 집안 사람”(히 3:6)이라고 말하였다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76)Nov 09, 2011 01:50 PM KST

로마가톨릭교회가 계몽주의운동과 종교개혁 운동에 대항하기 위하여 「트렌트 공회」 (1545~1563)를 소집하여 자체 교회의 부분적 개혁과 함께 가톨릭교회의 교리와 전통을 더 강화하고 수호하였다. 이것은 제 16세기 이후의 유럽에서 무성했던 민주주의와 과학의 발달에 대항하여 싸우려는 투쟁이었다. 특별히 18세기 말의 프랑스혁명 이후 자유사상과 물질주의사상이 팽창하여 불신시대가 된 것이 로마가톨릭교회의 신앙과 교리의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75)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75)Nov 09, 2011 01:48 PM KST

8세기 이후 모하메드의 이슬람교가 아라비아 반도에서 시작하여 북쪽으로 전파되어 중동지방 즉 옛 페르시아와 시리아 지방의 모든 나라를 정복하고 사하라 사막 이북의 북아프리카까지 진출하여 이 지역에 있던 그리스도교를 박해하였고, 특히 북아프리카의 이집트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그리스도교 정권들을 타도하고 이슬람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74)Nov 05, 2011 04:22 AM KST

동남아에는 일찍이 불교가 오랜 역사를 통해 전파되어 불교국가가 된 나라가 많았는데, 버마도 불교국가였다. 미국의 회중교회가 파송한 저드슨(Adoniram Judson, 1788~1850)과 라이스(Luther Rice)가 인도로 파송받아 배를 타고 캘커타(Calcutta)를 향해 여행하던 중 침례교 선교사 한 사람과 만나 대담하면서 세례문제에 관하여 이야기하다가 침례교의 세례교리를 배우고 자기가 받은 세례의식이 신앙의 확신 없이 된 것으로 알고 침례교를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73)Nov 05, 2011 04:21 AM KST

한반도 남단에 AD 42년에 건국된 가야국이 약 500년 후에 신라와 통일이 되었는데 가야국에 사도 도마가 선교하러 온 것으로 보이는 유력한 사적(史跡)들이 있다. 그것은 1987년 8월에 「도마석상」이라고 불리는 높이 4.87m, 폭 3.3m가 되는 큰 자연석 바위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 바위는 경북 영주군 왕류리에 있다. 이 석상의 머리 부분은 떨어져 없어졌고 어깨의 너비는 1.5m이다. 이 석상은 예술적으로 조각된 것이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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