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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 교세 감소와 정치세력화, 위험한 만남(4)

[김진호] 교세 감소와 정치세력화, 위험한 만남(4)Mar 06, 2012 09:17 AM KST

1990년대 이후 한국교회의 뚜렷한 행보로 나는,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세 가지를 주목한다. (1)해외선교의 활성화, (2)번영신학적 주체화 경향(후기자본주의적 신앙화 현상), (3)정치세력화. 이 세 가지는 교세 감소 현상에 대한 직접적인 대응으로 고안된 행보들은 아니지만, 교세 감소로 인해 위축된 자의식에 새로운 자긍심과 목표감을 불어넣어 주었다는 점에서 한국교회의 자기 해석의 실마리로서 기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중 여기서는 개신교의 정치세력화 문제에 집중할 것이다.

[김진호] 교세 감소와 정치세력화, 위험한 만남(3)

[김진호] 교세 감소와 정치세력화, 위험한 만남(3) Mar 03, 2012 07:51 AM KST

성장주의를 포기 혹은 지양하지 않았는데 교세가 정체 혹은 감소되고 있다. 한데 이러한 감소로 인한 위기감은 또 다른 위기를 낳는 악순환을 야기하고 있다. 여기서는 신학대학, 교회, 시민사회, 이 세 차원에서 이 악순환 현상에 관하여 이야기할 것이다.

[김진호] 교세 감소와 정치세력화, 위험한 만남(2)

[김진호] 교세 감소와 정치세력화, 위험한 만남(2)Feb 27, 2012 08:12 AM KST

한국 개신교의 교세가 1990년을 전후로 하여 갑작스런 반전이 일어난 것은 1990년이라는 시간성에 대한 해석을 필요로 한다. 나는 변곡점으로서의 ‘1990년 어간’이라는 시간 해석의 중심 변수를 ‘민주화’와 ‘소비사회화’로 이야기한 바 있다. 여기서는 ‘1990년 어간’을 ‘1990년’으로 표기할 것이다.

[김진호] 교세 감소와 정치세력화, 위험한 만남(1)

[김진호] 교세 감소와 정치세력화, 위험한 만남(1)Feb 25, 2012 07:32 AM KST

1990년은 한국 개신교 역사에서 분기점이라고 할 수 있다. 1960~1990년 사이에 가파르게 성장했던 개신교의 교세가 1990년을 기점으로 급속한 정체기에 들어갔다. 1961~1970년에 412.4%, 1971~1977년에 56.7%, 1978~1985년에 29.7%, 1986~1991년에 23.9%로 매우 높은 성장추세를 보여주었는데, 1992~1995년 사이에는 9.0%로 성장세가 급락했다. 그리고 2005년 인구센서스 결과에 따르면 1995년에 비해 개신교 신자의 수가 1.6% 감소한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드디어 개신교 신자 추이가 감소기에 돌입한 것이다. 소폭의 감소임에도 그간 고속성장을 계속해왔던 추이와 비교하면 급격한 반전의 계기점이 1990년임을 알 수 있다.

소래 마을에 심겨진 씨앗(끝)Jan 10, 2012 08:17 AM KST

복음의 씨앗은 참으로 놀라운 열매를 맺는다. 서상륜, 서경조 형제를 통하여 소래 마을에 심겨진 씨앗은 김판서, 김좌수 윤방의 가정을 통하여 소래 교회를 세우고 수많은 일군을 양성하여 소래마을에서 태어났거나, 그들과 인연이 맺어진 여러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놀라운 역사를 보여주셨다. 그들이 세상에서 크고 좋은 집을 짓고 잘 먹고 평안하게 잘 살았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악랄한 일본 제국주의의 강점을 받아 모진 시련과 핍박을 받았다. 그리고 그 후로 광복된 조국에서도 육신의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일제보다 못지않은 북한 공산도배들에게 잡혀서 비참한 최후를 마친 사람들도 여러 명이 된다.

[이충범의 길에서][15·끝][여행을 마치며]

[이충범의 길에서][15·끝][여행을 마치며]Jan 09, 2012 08:30 AM KST

황당한 심정으로 길에 서 있다 보니 문득 내 머리 속에 ‘전주덕진공원’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그래, 날도 더운데, 게다가 주말인데 일단 공원이나 가보자. 가면 시원한 분수대도 있고 관광 안내소도 있을 게 아닌가”하는 생각으로 수다를 떨며 지나가는 세 여성을 붙잡고 길을 물었다. 직장인인 듯한 30대 여성 셋 역시 매우 불친절하고 성의 없기는 매 한가지였다. 어차피 대도시한복판에서 이제까지 내가 걸어온 시골 인심을 기대하는 것은

[이충범의 길에서][14][세 사람의 전주사람]

[이충범의 길에서][14][세 사람의 전주사람]Dec 31, 2011 07:11 AM KST

다시 정읍으로 돌아온 시간은 이미 늦은 오후를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터미널 주변에서 늦은 점심을 때우고 전주행 버스를 탔다. 버스가 출발하여 시내구간을 벗어나자 스피커에서 오래된 팝송이 흘러나왔다.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d Oak Tree ..."

소래 마을에 심겨진 씨앗(20)

소래 마을에 심겨진 씨앗(20)Dec 30, 2011 09:23 AM KST

소래 마을 출신으로서 기독교 신앙과 애국심의 정화(精華)로서 김마리아의 존재처럼 선명하고 비장(悲壯)한 존재는 없다. 다른 분들도 다 우리나라의 교회사와 애국운동에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 귀중한 자취를 남겼지만 김마리아의 행적은 마치 한 토막 드라마와 같이 우리의 가슴을 저리게 하는 감동을 준다. 김마리아는 소래 마을 김 판서 댁의 삼대 김윤방(金允邦)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마을 사람들은 보통 이 가정을 [좌수 댁]이라고 부르며 존경하였다. 그 집안은 하인과 소작인들만도

[이충범의 길에서][13][정말 따듯한 세상]

[이충범의 길에서][13][정말 따듯한 세상]Dec 26, 2011 01:05 PM KST

인생은 참 얄궂다. 정말 만나기 싫고 다시 보기 싫은 사람은 꼭 다시 만난다. 야곱을 보면 우리 인생이 그런가보다 싶다. 그렇게 피하고만 싶던 형 에서, 얼마나 그 만남이 힘들었으면 천사인지 하나님인지 하고 씨름까지 하는 악몽에 시달려야만 했을까? 그런데 그 재회는 야곱의 걱정대로 비극이 아니라 오히려 화해였다. 아마도 하나님께서는 이승에서 쌓아둔 그런 불화를 다 털어 버리고, 서로 화해하고 용서한 후에 천국으로 오라고 우리를 이렇게 재회하게 만드시는지도

소래 마을에 심겨진 씨앗(19)Dec 21, 2011 10:03 AM KST

남궁혁은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에 대하여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오직 그의 외할아버지 임씨가 구한 말 승지(承旨)와 평안감사를 역임한 고관이었다고 한다. 그를 귀여워 한 외할아버지를 따라 평양 감영으로 가서 일곱살이 될 때까지 있었다.

[이충범의 길에서][12][빛고을을 뒤로 하고]

[이충범의 길에서][12][빛고을을 뒤로 하고]Dec 12, 2011 07:55 AM KST

숨쉬기도 힘들도록 조마조마한 가슴으로 숨죽이고 있는 사이 버스는 광주에 접근해가기 시작했다. 무심코 버스 밖을 내다보니 가뜩이나 숨쉬기 힘든 내 가슴이 더 죄어온다. 멀리 보이는 아파트숲, 버스 옆으로 쌩쌩 달려가는 승용차들, 거리를 가득 메운 상점들과 사람들, 바로 그 흉물스러운 대도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떠난 지 며칠 됐다고 이런 풍경이 엄습해오자 가슴이 확 막혀왔다. 버스는 새로 지은 대형 터미널로 들어섰고 눈치 보며 차에서 내린

[김경재] 한류(韓流)에 대한 문화신학적 조명(완결)

[김경재] 한류(韓流)에 대한 문화신학적 조명(완결) Dec 08, 2011 08:43 AM KST

지구촌이 나날이 가속화 되어가면서 문화들은 상호교류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문화혼종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한류’ 중에서도 K-Pop 장르는 그 변화속도가 다른 문화콘탠츠에 비하여 빠른 것을 볼 수 있다. 예술 비평가 이동연의 말을 들어보자.

[김경재] 한류(韓流)에 대한 문화신학적 조명(3)

[김경재] 한류(韓流)에 대한 문화신학적 조명(3) Dec 05, 2011 08:07 AM KST

조지훈(1920-1968)은 민족성이라는 것은 동일한 풍토적 환경에서 역사발전을 겪으면서 집단생활을 하는 동안에 형성된 공동적 마음바탕 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한민족의 성격은 풍토적 특성으로서 ‘대륙성’과 ‘해양성’ 두가지가 서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았다. 대륙성이란 대륙적 지질 기후 풍토가 주는 대륙적 웅혼성일 터인데 이것이 민족성 속에 역동적 ‘격정성’을 길러주었고, 해양성은 남방적 해양에 접해있음으로 인하여 길러지는 예술적 ‘평화성’을 길러주었다고 분석한다.

[이충범의 길에서][11][길에서 이탈하다]

[이충범의 길에서][11][길에서 이탈하다]Dec 05, 2011 07:58 AM KST

터미널에서 나와 삼남대로인 831번 지방도로를 타기 위해 걷기 시작했다. 오래 된 고도이다 보니 나주는 도시 자체가 유적지나 다름없다. 사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터미널도 예전 나주성 동쪽 문이 있던 자리였다. 그 외에도 나주엔 수많은 지석묘들과 삼한시대의 천년 유적지들이 널려 있고 나주향교를 비롯하여 여러 채의 대궐 같은 고가들이 즐비하다. 원래 부자동네였기 때문에 조선시대에 지은 호화주택들이 남아 있는 셈이다. 게다가 나주엔

소래 마을에 심겨진 씨앗(18)Dec 05, 2011 07:29 AM KST

김필례 선생이 일본 유학을 마친 후 우리나라에 돌아와서 일생동안한 일은 너무나 방대하고 다양하여 그 과정을 한 줄기의 전기(傳記)로 기록하기가 난삽(難澁)하다. 그러므로 나는 여기서 그의 업적을 분야별로 구분하여 기록하고자 한다. 그러자니 자연히 앞뒤의 순서에 혼란이 올 수도 있음을 말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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