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와 묵상] 왜 그대는 그렇게 화창한 날씨를 약속하여

이인기 목사(반포소망교회)

왜 그대는 그렇게 화창한 날씨를 약속하여 

                                                                                                                        윌리엄 셰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

왜 그대는 그렇게 화창한 날씨를 약속하여

외투도 없이 나로 여행길에 나서게 했는가?

도중에 나는 비열한 구름에 따라잡혔고

그대의 화사한 모습마저 더러운 운무로 가려졌네.

이제는 비록 그대가 구름을 뚫고 나와

비바람에 젖은 내 얼굴을 말려주어도 충분치 않네.

그런 위안은 상처에 고약을 발라주나

수치심을 치료 못하니 누군들 반기겠나

그대가 미안해 해도 나의 슬픔은 치유되지 않는다네.

그대가 통탄한들 나의 상실감이 사라질까

모욕한 자의 사과는 그저 미약한 위안에 불과하다네

깊은 모욕의 십자가를 진 사람에게는.

아! 그러나 그대가 사랑으로 흘리는 눈물은 진주로다

그대의 모든 잘못을 보속할 만큼 찬란하므로.

시인(1564-1616)은 약속의 본질적인 의미를 성찰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 시는 그의 소네트 모음 중 제34편이며, "그대"는 약속을 제기한 자이고 태양 혹은 태양에 비길 불명의 연인을 가리킨다. 그는 연인들 사이에서 벌어진 약속 위반과 그것에 대한 투정을 소재로 삼고서 약속이란 생명을 걸고 지켜야 하는 것이라고 알린다. "그대"는 사랑에 빠진 사람의 눈에 태양처럼 빛나는 존재이므로 그들 사이의 약속도 자기초월적 결심을 전제하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말해서, 약속은 원래 현재에 부재한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믿는 행위이므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존재를 걸어야 한다.

"그대"의 약속은 화자에게는 인생의 소망에 해당한다. 찬란한 태양처럼 그의 행로에 길잡이가 된다. 그러나 항상 그러지 않는데, 가끔은 그 소망이 배반당하는 경우도 있다. "왜 그대는 그렇게 화창한 날씨를 약속하여/ 외투도 없이 나로 여행길에 나서게 했는가?" "화창한 날씨"는 연인들 사이의 원만한 관계, 혹은, 인생의 번영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화자는 그것에 대한 약속이 배반당했다고 그 연인에게 불평한다. 태양이 약속을 어겼다고 불평하므로 인생의 기대가 배반당하는 상황, 혹은 운명의 장난에 대해 불평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어쨌든, 배반감은 상대방의 약속을 절대적으로 신뢰했음을 암시한다. 그래서 공교롭지만, 외투는 약속에 대한 불신감을 표시한다. 외투를 준비했다면, 화창한 날씨에 대한 약속이 배반당할 것을 염두에 두었다는 표시이다. 어쩌면, "비열한 구름"과 "더러운 운무"와 같은 요소들이 태양 같은 연인의 심상을 가리고 더럽힐 가능성을 전제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외투 없이 길을 나섰다가 비바람을 맞고 말았다.

그 약속이 인생의 약속이 아니더라도 한번 배신당한 마음은 그 어떤 변명으로도 돌이키기 어렵다. 왜냐하면, 절대적으로 신뢰했던 마음이 배반당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불신의 구름을 걷어내려고 노력하더라도 그 노력이 "비바람에 젖은 내 얼굴을 말려주어도 충분치 않네." 절대적인 신뢰를 바친 "내 얼굴"이 비바람에 젖어버렸기 때문에 "그런 위안은 상처에 고약을 발라주나/ 수치심을 치료 못하니 누군들 반기겠나." 그 수치심은 이제 치유되지 않는 슬픔이 된다. "그대가 미안해 해도 나의 슬픔은 치유되지 않는다네." 그 슬픔은 이전에 태양처럼 찬란하게 빛났던 연인의 존재를 덮었다. "비열한 구름"도 비열하지 않게 되었고 "더러운 운무"도 더럽지 않게 되었다. 이제 내 마음에서 "그대"는 죽어버렸다. "그대가 통탄한들 나의 상실감이 사라질까." 이렇게 통탄이 공명되지 못하는 이유는 이미 "그대"가 화자의 마음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젖은 얼굴은 연인의 죽음을 대변한다.

연인의 죽음은 관계상 나의 존재의 죽음이기도 하다. 절대적인 신뢰를 보냈던 만큼 자신이 '절대적으로' 모욕당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을 "깊은 모욕의 십자가를 진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모욕한 자의 사과는 그저 미약한 위안에 불과하다네." 그는 어떠한 사과로도 치유되지 않을 인격적 모독의 상처를 안게 되었다. 십자가의 고통에 비긴 만큼 그 상처는 인격적 죽음을 암시한다. 이것이 약속이 생명의 비중을 지니는 이유이다.

그러나 구름과 운무가 영원히 태양을 가리지 못하듯이 그 상실감을 치유할 길이 없지는 않다. "아! 그러나 그대가 사랑으로 흘리는 눈물은 진주로다/ 그대의 모든 잘못을 보속할 만큼 찬란하므로." 시인은 소네트의 형식을 따라 마지막 두 행에서 반전을 기획한다. "사랑으로 흘리는 눈물"은 수치심, 슬픔, 상실감, 모욕조차 치유한다. 그것이 "그대의 모든 잘못을 보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진주가 눈물의 형상이므로 사랑의 눈물은 진주처럼 진실하다. 상처가 보석으로 바뀌었으니 진주는 진실한 만큼 찬란하다. 그 눈물이 "그대"가 약속했던 "화창한 날씨"를 다시 기대하게 할 것이다. 결국, 그 약속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게 되었으니 그 약속도 찬란하다.

시인은 약속의 신뢰성을 회복하기 위해 자기를 죽이는 노력이 필요함을 알리고 있다. 약속 위반으로 "내 얼굴"이 죽어버린 대로 "그대"도 얼굴을 죽여야 하는 것이다. 가식적이지 않은 눈물은 자기의 결정이 잘못이었음을 몸으로 증명하며 자기의 자존심을 죽였음을 공표한다. 그렇게 자기를 죽이는 것만이 "그대의 모든 잘못을 보속[한다.]" 따라서 약속은 생명을 걸고 지키겠다고 결심할 때 절대적인 신뢰로 지지받는다. 본질적으로 말해서, 약속이란 오지 않은 미래를 현재에 확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그 기간 만큼의 생명을 걸지 않고서는 실현하기 어렵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약속하실 때 둘로 쪼개진 짐승의 사이로 지나가심으로써 약속 위반이 죽음을 의미한다고 알리신 대로 약속은 자기의 얼굴, 즉 생명을 걸고 지켜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람과의 약속을 절대적으로 지키신 대로 우리와의 약속도 생명을 걸고 지키신다. 그분은 약속할 때 자기의 이름을 거시는데, 그 이름이 그분의 얼굴이며 그분의 생명이다. 그분은 우리의 구원을 약속하신 대로 십자가에서 죽음으로써 그 약속을 지키셨다. 그분에게는 약속과 이름과 얼굴과 생명이 등가어이다. 그 약속의 당사자인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도 그분의 약속을 절대적으로 믿으며 그분의 말씀에 따라 정욕과 탐심을 죽이고 과거의 자아를 죽이는 회개를 함으로써 그 약속의 생명적 조건을 준수해야 하는 것이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사랑의 눈물을 흘리셨듯이, 우리도 그 은혜를 기억하며 "사랑으로 흘리는 눈물"을 진주처럼 찬란히 빛나게 할 때 우리 영혼에는 "화창한 날씨"가 이어지게 된다.

※성경을 읽을 때 "자세히 보아야/ 예[쁜]" 성품을 찾을 수 있다. "오래 보아야/ [자신이] 사랑스[러운]" 존재임을 알게 된다. 이로써 우리는 말씀의 생명력을 확인할 수 있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은 이처럼 성경 읽기의 과정을 형상화한 듯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시의 형상화 기능을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과정에 적용하면 그 말씀의 의미를 형상으로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소박한 논리를 따라 의미의 형상화 작업에 시와 하나님의 말씀을 결부해보았다. 글쓴이는 반포소망교회에 시무하는 이인기 목사다. 매주 한편의 시를 다룰 예정이다.- 편집자주

관련기사

좋아할 만한 기사
최신 기사
베리타스
신학아카이브
지성과 영성의 만남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개인 구원만 지나치게 강조해 창조 신앙 무력화돼"

창조 신앙을 고백하는 한국교회가 개인 구원만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신앙이 사사화 되면서 연대 책임을 물어오는 기후 위기라는 시대적 현실 앞에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마가복음 묵상(2): 기독교를 능력 종교로 만들려는 번영복음

"기독교는 도덕 종교, 윤리 종교도 아니지만 능력 종교도 아님을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자의 실존적 현실이 때때로 젖과 꿀이 흐르는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특별기고] 니체의 시각에서 본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

""무신론자", "반기독자"(Antichrist)로 알려진 니체는 "유대인 문제"에 관해 놀라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소개함으로써 "유대인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영적인? 무종교인들의 증가는 기성 종교에 또 다른 도전"

최근에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무종교인의 성격을 규명하는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정재영 박사(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종교와 사회」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신의 섭리 숨어있는 『반지의 제왕』, 현대의 종교적 현실과 닮아"

『반지의 제왕』의 작가 톨킨의 섭리와 『반지의 제왕』을 연구한 논문이 발표돼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숭실대 권연경 교수(성서학)는 「신학과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논문소개] 탈존적 주체, 유목적 주체, 포스트휴먼 주체

이관표 박사의 논문 "미래 시대 새로운 주체 이해의 모색"은 세 명의 현대 및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의 주체 이해를 소개한다. 마르틴 하이데거, 질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교회가 쇠퇴하고 신학생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고 필요하다"

한신대 김경재 명예교수의 신학 여정을 다룬 '한신인터뷰'가 15일 공개됐습니다. 한신인터뷰 플러스(Hanshin-In-Terview +)는 한신과 기장 각 분야에서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진과 선에 쏠려 있는 개신교 전통에서 미(美)는 간과돼"

「기독교사상」 최신호의 '이달의 추천글'에 신사빈 박사(이화여대)의 글이 소개돼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키에르케고어와 리쾨르를 거쳐 찾아가는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사회봉사를 개교회 성장 도구로 삼아온 경우 많았다"

이승열 목사가 「기독교사상」 최근호(3월)에 기고한 '사회복지선교와 디아코니아'란 제목의 글에서 대부분의 교단 총회 직영 신학대학교의 교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