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의 시발점을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대학 정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인 사건이라고 보는 시각은 이의 없이 통용적이다. 그런데 분명히 루터 이전에도 존 위클리프나 얀 후스와 같은 종교개혁의 선구자들이 있었고, 이들도 교황의 우상화를 비판하였고 성경을 번역하여 읽게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을 일으킨 인물로 우리는 루터를 꼽는다. 폴 틸리히는 루터에 대하여 "로마 체제를 뚫고 나가는데 성공한 인물"이고, "세계를 변혁할 수 있는 돌파를 감행했던 것은 오직 한 사람 루터"였다고 말했다.
루터가 가지고 있었던 어떤 점이 당시 교회와 사회를 변혁시킬 수 있는 동력을 가졌던 것인가? 틸리히는 루터가 당시 로마가톨릭이 가지고 있었던 몇 가지 왜곡을 뚫고 나갔다고 밝히면서, 루터의 돌파를 소개한다. 틸리히가 밝힌 루터의 돌파를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틸리히는 루터의 돌파, 즉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가톨릭적 신 관계'를 가지든가 아니면 '프로테스탄트적 신 관계'를 가지든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밝힌다. 즉 종교개혁 전의 교회의 신앙과,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신앙은 혼합될 수 없는, 타협될 수 없는, 다른 신앙의 모형이 되었다고 틸리히는 말한다.
루터의 돌파 1 : 회개의 성례전에 대한 공격
루터가 종교개혁 초기부터 변혁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은 가톨릭교회의 회개의 성례전이었다. 로마교회의 두 가지 주요 성례전은 미사와 회개(고해성사)였고, 모든 신자들은 이 두 성례전 사이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이 중 회개의 성례전은 모든 신자들의 삶을 극심하게 억눌렀다. 회개의 성례전에는 통회, 고해, 사회, 속죄 등의 부분들이 있었는데, 이 중 특히 '속죄'가 여러 가지 파생적인 의식들을 만들어냈다. 속죄는 "죄가 용서된 뒤에도 우리에게는 죄가 남기 때문에 오히려 선한 일이 필요하다"고 하여, 사제는 신자들에게 속죄로서의 '행위'를 부과했다. 그런데 이 행위가 너무 무거운 것이어서 신자들은 이것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했고 더 나아가 이를 원망했다. 교회는 이 원망을 잠재우기 위해 사제들이 지운 '참회의 행위'를 면제해주는 제도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면죄부'다. 애초에 면죄부는 사제들이 신자들에게 부과한 벌을 면해주는 것이었던 것이다.
루터는 회개의 성례전 그 자체에 대하여 다시 생각했고, 마침내 회개의 성례전 그 자체를 반대하는 입장을 확고히 하게 된다.
회개의 성례전은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죄 용서의 문제에 인간의 '행위'가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회개가 하나의 의식으로 진행되면서 하나님과 신자 사이의 직접적 관계성을 형성하지 못하다는 것에 있었다.
루터는 인간이 자기 행위로 속죄할 수 있는 길은 전연 없다고 밝힌다. 속죄가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가 하나님께 드리는 속죄"만이 있을 뿐이다. 의식적인 사죄의 행위를 함으로써 인간이 죄책감을 더는 듯한 감정을 가질 수는 심리적 효과를 기대할 수는 있지만 그러나 그것이 죄용서에 필연적인 것은 전혀 아니다. 루터에 따르면 인간의 속죄는 오히려 위험한 개념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신을 전적으로 만족시킬 수가 없고" "어떠한 속죄[만족]도 드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죄의 문제로 기도할 때 인간이 들을 수 있는 대답은 '어느 정도의 속죄행위'가 아니라 '신으로부터의 사죄' 메시지이다. 신은 인간을 용서하시는데 그것은 전적으로 신의 자유로운 의지이자 인간을 향한 신의 은총이지, 그것에 인간의 행위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인간이 신의 이같은 용서를 받기 위해 회개의 성례전이 필요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교회라는 기관도 사실은 필요 없다.
이 문제는 자연스럽게 두 번째 문제로 옮겨간다. 왜냐하면 루터의 이 주장에 따르면 신자가 회개를 위하여 사제에게 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루터는 회개를 '형벌에서 풀려나기 위한 체계'로부터 "신과의 인격적 관계"의 문제로 전면 전환시켰다. 죄를 용서하는 것은 사제가 부과한 속죄의 행위들의 완성도 아니고, 교황의 선포도 아니고, 오직 신 뿐이다. 만약 교황이 죄 용서에 대하여 어떤 말을 한다면 그것은 "신이 이미 용서해주었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일 뿐"이다. 인간이 속죄라는 것에서 어떤 것을 담당한다면, 그것은 신께서 죄를 용서하셨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뿐이다. 다른 말로 신의 은총을 받아들이는 것 뿐이다.
루터의 돌파 2: 교회에 대한 공격
루터가 처음부터 가톨릭교회 전체를 개혁하려는 생각을 한 것이 아니었다. 루터의 95개조 반박문도 면죄부 장사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루었고, 루터는 교회가 이 부분에 대한 개혁을 단행하기를 바랐다. 그런데 이후 루터는 교황청의 위협을 받으면서 이제 교회의 체계를 공격하는 입장에 서게 되었다. 루터는 그리스도교의 유일하고 절대적인 기준은 교황이 아니라 성서의 메시지임을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교회와의 대립각을 점차 세우게 되었다.
이에 루터는 95개조를 발표한 지 약 6개월이 지난 시점인 1518년에 열린 하이델베르크 변론에서는, 면죄부 장사 문제 보다도 칭의론을 중점적으로 개진하였다. 이유는 "교황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는 힘을 하나님의 의와 칭의의 개념에서 발견하였기 때문이다."(김균진, 2018).
당시 교황은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인정되었다. 그러나 루터는 "어떠한 인간도 신적 권한의 대리자일 수 없"음을 공표했다. 교황이 자신을 신적인 법에 올리는 것은 '악마적 주장'이며 '반그리스도'의 주장이라고 루터는 강력하게 입장을 표명한다. 루터가 '반그리스도적'이라고 했을 때 이것은 교황을 개인적으로 공격하기 위함이 아니라, 교황의 존재 방식을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하는 '주장'을 겨낭한 것이라고 틸리히는 부연한다.
루터의 돌파 3: 가톨릭 윤리에 대한 공격
루터는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의 수도사 출신이었다. 틸리히는 루터가 수도원에서 발견한 수도원의 '이중의 도덕' 문제를 토론의 장으로 가지고 나왔음을 밝힌다. 당시 수도원에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권고가 있고, 다르편으로는 수도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좀 더 높은 수준의 '복음의 권고'가 있었다. 그래서 수도사들은 일반인보다 더 엄격한 생활, 이를테면 단식, 복종, 겸손, 독신 등과 같은 규율들을 지켜야 했는데, 문제는 수도사에 대한 이 엄격한 규칙이 "다른 사람들보다도 존재론적으로 높은 지위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만약 수도사들이 일반인들보다 더 높은 기준으로 살아서 더 높은 완전성을 얻거나 좀 더 높은 신에 대한 접근성을 갖게 된다면, 신과 인간의 관계는 '인간의 행위'에 의지하는 문제가 된다. 신과 인간의 관계는 신앙인데, 인간의 행위가 신앙보다 앞서게 된다. 즉 윤리가 신앙보다 앞서게 된다.
틸리히는 "루터는 종교와 윤리의 관계를 역전시켰다"고 밝힌다. 루터에 따르면 우리는 신과 결합되지 않고서는 신의 의지를 실행할 수 없다. 즉 신과의 관계가 우선이고 윤리적 행위들은 그 이후에 따르는 결과이다. 인간이 신과의 관계에서 행할 수 있는 선이 있다면 그것은 "신이 나를 선하다고 선언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즉 신이 나를 받아들였음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인간이 신과의 관계에서 할 수 있는 일이다. 그 어떤 인간의 행위도 이것에 선행하여 신과 인간의 관계를 구축할 수 없다.
이런 면에서 틸리히는 루터의 '솔라 피데'(sola fide, 오직 믿음[신앙]으로)가 어떤 면에서는 오해를 받고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루터의 이 말은 단지 '신앙을 통해서만이'라는 뜻이 아니라 "신앙을 통해서만이 받아들여지는 '은총'만에 의해서"를 지시한다. 루터가 말하는 믿음의 핵심에는 '은총'에 대한 믿음, 이 은총을 받아들이는 믿음이 있다는 것이 틸리히의 설명이다.
루터의 회개의 성례전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시작한 그의 많은 변론들과 신학적 작업들은, 신과 인간의 관계에 새로운 길을 열었다. 가톨릭교회와 프로테스탄트는 서로 다른 신앙의 모양을 가지게 되었다.
-참고한 책: 폴 틸리히, 「그리스도교 사상사」(대한기독교서회), 김균진, 「루터의 종교개혁」(새물결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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