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텍스트 속으로 11] 인간다움에 대한 숙고가 부족한 채 종교에 도취되면

하이데거의 실존주의와 존재에 대한 소고 〈휴머니즘 서간〉(이선일 역), 《들길의 사상가, 하이데거》(박찬국)

하이데거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관심은 단연 실존이고, 이 실존에의 탐구는 인간의 인간다움의 발견을 향한 노정이다. 실존주의가 크게 일어난 20세기는 통째로 인간에 대한 환희와 환멸에 담가졌다가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였다. 그러나 깊은 절망만큼 인간 자신에 대하여 깊이 천착했고, 이들의 작업의 결과물들은 오늘 우리에게도 우리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풍성한 보물들을 보유하고 있다.

하이데거는 사르트르와 함께 이 시대 대표적인 무신론적 실존주의자로 꼽힌다. 여기서 무신론적이라는 말은 창조주 신을 부정하는 말이 아니라, 철학함에 있어서 그 범위를 인간 자체로 한정지어 진행하였다고 이해하는 것이 낫다. 예컨대 중세의 철학에서 인간은 단연 피조물로서 창조주와의 관계 속에서 인간 이해가 촉구되었으나, 실존주의에서는 인간 자체에만 집중한 것이다.

여기서 혹 기독교인들이 '왜 신을 제한하고 인간에만 집중하는가, 그러면 진정한 인간 탐구가 불가하다'라고 발끈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인간다움에 대한 충분한 숙고가 없는 사람이 왜곡된 종교적 신념에 도취되어 비인간적인 행위들을 저지르는 일들을 종종 목격한다. 왜곡된 신과의 관계에 도취되어 신앙은 있으나 도덕이 없는 상태에 이른다. 이런 부족한 글에 이름을 올리기조차 미안한 어린 영혼들, 정인이와 시우를 잔인하게 학대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계모와 부친은 모두 기독교인들이었다. 소위 가나안성도나 플로우팅성도가 아닌, 교회 내에서 열심을 보이는 이들이었다. 우리는 얼치기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인간의 인간다움에 대하여 숙고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종교는 아편이라는 비판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리게 된다.

하이데거는 인간이 다시 '존재를 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존재를 물어야 하는 이유는 인간이 존재에 대한 사유를 잃어버려서다. 그렇다면 하이데거가 말하는 존재란 무엇일까?

이정표 이선일 하이데거

존재를 말하기 전에 하이데거가 인간의 본질을 어떻게 규정하였는지 살피는 것이 좋다. 하이데거는 "인간의 실체는 탈-존이다"라고 말했다. 탈존(Ek-sistenz)은 '밖에 서 있음'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어디'에 탈존하느냐가 그 다음의 질문이 될 터인데, 탈존은 "존재의 밝음 안에로의 탈존"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존재의 밝음 안에 서 있을 때, 인간다운 것이다.

그렇다면 존재는 무엇이길래 인간은 존재의 밝음 안으로 서 있을 때 인간다운 인간이 되는가?

하이데거는 존재에 대하여 "존재는 단적으로 초월이다"라고 썼다. 기독교인들은 이 부분에서 '신'을 떠올리겠지만, 하이데거는 존재는 "신이 아니다"라고 밝힌다. 그리고 존재를 대상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존재라는 개념은 정의될 수 없다고"고 밝히고 있어, 그의 존재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애씀이 필요하다. 대신 하이데거는 존재에 대하여 "그것은 그것 자체이다", "존재는 소박한 가까움이다", "존재 자신은 관계다" "존재는 밝음 자체이다"라고 부연한다.

정리하면, 인간다운 인간은, '그것 자체이고, 가까움이고, 관계이고, 밝음 자체인 그러한 존재' 안에 서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위에서 밝힌 존재란, 우리 삶에서 어떤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가시적으로 정의되지 않는 이 존재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오늘날 우리에게 인간다운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고민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들길의 사상가 하이데거 박찬국

하이데거는 이 시대의 문제가 "존재에 대한 물음이 망각 속에 묻혀버린" 것이라고 밝힌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존재가 무엇인지 진중하게 사유하지 않고 숙고하지 않는다. 존재에 대하여 사유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인간다움을 발현하기 위하여 '존재의 밝음' 안에 서 있지 않고 '다른 것' 안에 선다. 그 다른 것이란 예컨대 돈, 명예, 정치 이념, 종교 교리 등이 될 수 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우상'이다.

우상숭배의 문제에서 종교도 교회도 결코 자유롭지 않다. 하이데거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진리는 단순한 사물이 아니다... 사람들은 신을 관리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어떠한 제도도 어떠한 도그마도 진리를 보존할 수 없다."

개인이 가진 종교적 신념이 진리와 동일한 것이 아니다. 비일상적인 초월을 체험했다 하더라도 그가 신을 가진 것은 아니다. 교회에서 열심을 내어 찬양하고 기도하고 선교를 다녀왔다 할지라도, 그가 인간다운 인간이라는 보장은 없다. 종교적 행위가 비인간적인 행위를 덮지 않는다. 우리는 인간다운 인간의 인간다움, 휴머니즘에 대하여 깊게 숙고해야 한다. 얄팍한 술수로 하나님을 내 욕망에 따라 왜곡하여 이용하지 않기 위함이다.

 

북리뷰/서평 문의 eleison2023@gmail.com

*책/논문에서 직접 인용한 어구, 문장은 큰따옴표(", ")로 표시하였음을 밝힙니다.

이민애 theworld@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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