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루터는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대학 정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이기 바로 전 달인 9월 4일에 "스콜라 신학을 반대하는 변론"을 발표했다. 그는 자신이 스콜라 철학에 반대함을 명백하게 밝힌다. 루터는 스콜라 철학의 어떤 부분에 대하여 반대하였는가?
김균진 박사는 루터가 "스콜라 신학의 구원론을 거부한다"고 밝힌다. 루터가 스콜라 신학의 구원론의 어떤 점을 거부하고 반대했는지 이 글에서 기술하고자 한다.
루터는 스콜라 신학의 잘못된 이론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김균진,2018,p183)
①아담의 죄의 타락 이후에도 선을 행할 수 있는 인간의 자연적 능력은 전혀 타락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②인간은 선을 행하고 악을 버릴 수 있으며...
③인간은 그의 자연적 능력으로부터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행할 수 있고 지킬 수 있다.
④인간은 그의 자연적 능력으로부터 하나님을 모든 것보다 더 크게 사랑할 수 있고...
⑤인간이 자기의 능력껏 행할 때 하나님은 그에게 은혜를 주신다.
위의 정리에 따르면, 인간의 자연적 능력은 선을 행할 수 있고, 신의 모든 계명을 지킬 수 있다. 신의 은혜 없이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또한 모든 계명을 지키는 자라면, 그는 구원에 있어 스스로 일종의 자격 같은 것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중세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수많은 의례와 행위들은 이러한 이해로부터 나왔다.
중세 말기 스콜라 철학에 영향을 준 사상으로 반(半)펠라기우스주의가 있다. 반펠라기우스주의에 따르면 "인간의 본성은 타락하였지만, 그럼에도 선을 행할 수 있는 의지와 자유의 능력"이 남아있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의 자연적 능력으로 하나님을 그 무엇보다 먼저 사랑할 수 있고...인간은 하나님의 구원에 협동할 수 있고, 구원의 은혜를 상으로 받을 수 있다." 즉 인간의 의지와 능력이 하나님의 은혜와 '협동'할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인간의 행위가 구원에 주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반펠라기우스주의나 이것의 영향을 받은 스콜라 철학이 자신의 실존에서 힘이 없음을 깨달았다. 루터는 죄에 대하여 매우 민감하였고 아주 작은 죄에도 괴로워하였고, 그가 너무 세세한 죄까지 고해성사를 하는 바람에 그의 스승 슈타우피츠는 "죄다운 죄를 짓고 다시 오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는 스스로 매우 엄격하게 살았다. 자신이 몸담고 있었던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의 모든 규칙을 지키고 때로 지나친 고행도 실천하여, 다른 수도사들로부터 "제2의 바울"이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였다. 루터 자신도 "흠 잡을 데가 없는" 생활을 했음을 스스로 털어놓았다. 그러나 그는 "고행에 고행을 거듭할수록 자신의 뿌리 깊은 죄성과 무력함을 더 깊이 깨닫고 좌절과 절망에 빠질 뿐이었다."(김균진,2018,166)
루터는 이러한 자신의 고뇌를 이른바 반펠라기우스주의의 '신인협동설'에서 해결할 수 없었고, 또 심판하고 벌하는 이른바 '의로운 하나님'에게서 안식을 얻을 수 없었다. 루터는 펠라기우스와는 반대편에 있었던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에서 자신의 신학적 근거를 다진다. 펠라기우스가 인간은 완전한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고 또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도 인간의 행위가 결정적 의미를 가진다고 본 것에 반해,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자유의지는 손상되었고 구원은 오직 신의 은총으로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렇게 나온 루터의 인간의 의지에 대한 입장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입장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루터는 인간의 의지에 대하여 "은혜 없는 인간의 능력과 의지의 변론"(1516)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다.
①하나님의 은혜에서 배제되어버린 인간은... 은혜를 위하여 준비할 수 없다. 오히려 그는 필연적으로 죄 아래 머문다.
②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의 의욕과 향함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자비에 있다.
③은혜 없는 인간의 의지는 자유롭지 못하다.
루터는 하나님의 은총에 대하여 "스콜라 신학을 반대하는 변론"(2517)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다.(김균진,2018,p180)
①...하나님의 은혜를 얻기 위해 인간 자신이 미리 준비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②의롭게 하는 은혜가 없다면, 하나님은 인간을 받아들일 수 없다.
인간의 의지가 홀로 선할 수 없고, 하나님의 은총이 인간의 행위에 의지한 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자유로운 내어주심이라면, 인간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있게 된다. 루터는 인간의 죄를 값없이 용서하는 "은혜로운 하나님" 안에서 평안을 얻고, 그것을 자신의 신학의 근거로 삼는다.
이제 루터는 새로운 "하나님의 의"에 대하여 말한다.(롬1:17) 그 의는 인간을 심판하는 의가 아니라, 아직 죄인 된 인간을 의롭다고 칭해주시는 그러한 의다. 이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의인데,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는 차별이 없는 의다.(롬3:22) 이 의는 행위가 아닌 믿음이 있는 곳에 나타난다. 루터는 "하나님의 의"에 대한 강력한 확신을 가지고 로마교회에 정면 도전한다. 그는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하고 6개월 이후 열린 하이델베르크 변론에서 칭의론을 개진한다. 루터가 그 이후 발표한 문서들에서도 칭의론이 중심 문제로 다루어진다.(김균진,2018,p176)
루터가 스콜라 신학의 구원론과 결별하고 "하나님의 의"를 중심으로 한 구원론을 개진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그의 깊은 성경 연구라는 밑바탕이 있었다. 루터는 1509년 성경학사 학위와 교의학사 학위를 받고 에르푸르트 대학에서 강사 자격을 얻어 가르치는데 이 시기에 "다른 어떤 책보다도 성경과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글에서...많이 배웠다"고 고백했다. 또 이후에 1512년 신학박사 학위를 받고 그해에 선임사제 슈타우피츠의 후계자로 신학부의 성경교수가 되었는데, 이때 성경주석을 시작하여 죽을 때까지 성경주석을 강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루터는 신학자들에게 신학책들만 읽지 말고 성경 자체를 읽으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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