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와 묵상] 빨간 우체통

이인기 목사(반포소망교회)

빨간 우체통

                                                                                                                                       윤재철

​누구에게도

아직 부치지 못한

편지 한 통쯤은 있어

빨간 우체통 거기 서 있다

키는 더 자라지 않는 채

짜장면집 배달통처럼

모서리는 허옇게

빛도 바랜 채

차들 잠시 머물다 떠나는

신호등 앞 길가

플라타너스 그늘 아래

하루 종일 하품하며

그래도 누구에게나

아직 받고 싶은

편지 한 통쯤은 있어

빨간 우체통 거기 서 있다

시인(1953- )은 우체통에 인격을 부여하며 막연할 수도 있을 기다림을 그것의 정체성으로 삼는다. 의인화는 인간의 특성을 형상화하고자 하는 것이므로 기다림은 인간성의 고유한 특성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기다림은 막연하다. 기다림의 대상이 지정되거나 한정된다면 그 막연함이 줄어들겠으나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 인생사이고 보면, 그 막연함은 기다림의 본질에 해당한다. 막연하기에 기다리는 것이다. 그 과정에 세월의 흐름과 권태가 막연함을 가중할 수 있다. 그로써 그 결과가 허무할 수 있으나 그렇게 생각하게 되면 기다릴 수 없다. 따라서 기다림은 소망을 전제한다. 그 소망이 풍상과 권태를 견딜 이유를 제공한다.

그 이유 때문에 기다리며 존속하므로 소망은 존재의 의무이기도 하다.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기다려야 한다. 존재는 막연함을 견뎌야 한다. "누구에게도/ 아직 부치지 못한/ 편지 한 통쯤은 있어/ 빨간 우체통 거기 서 있다." 우체통이 견뎌야 하는 막연함은 삼중적이다. 누가 편지를 부칠지 모른다. 편지가 부쳐질 가능성은 있으나 그때가 언제인지 알 수 없다. 그 가능성은 최소 한 통의 편지로도 실현될 것이지만 얼마나 될지, 아니면, 한 통도 없을지조차 모른다. 이런 삼중의 막연함에도 불구하고 "빨간 우체통 거기 서 있[는]" 까닭은 불명의 발신인이 그리는 소통의 소망이 이루어질 순간 때문이다. 기다려야 그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

기다리는 자는 까치발을 딛고 먼 길을 내다본다. 마치 키를 위로 늘일 듯이 온몸의 신경과 근육을 긴장시키지만, 시간이 지나도 "키는 더 자라지 않는 채/ 짜장면집 배달통처럼/ 모서리는 허옇게/ 빛도 바랜 채" 기다림만 이어질 수 있다. 풍상에 노출되다 보면 모든 것들은 "짜장면집 배달통처럼" 일상적으로 닳고 윤기를 잃어간다. 편지란 원래 부재한 자와의 소통을 의도하므로 부존재가 존재하게 될 시점을 특정할 수 없다. 하세월이다. 그동안 풍화가 일어나고 소망조차 사그라들기 쉽다. 풍상은 소멸을 연상시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다리는 것은 "누구에게도/ 아직 부치지 못한/ 편지 한 통쯤은 있[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언제든 편지 한 통쯤은 부칠 것이라는 소망은 믿음에 해당한다. 믿음은 소망이 즉시 실현되지 않아도 기다릴 동력을 공급한다. 그 힘 때문에 "차들 잠시 머물다 떠나는/ 신호등 앞 길가/ 플라타너스 그늘 아래/ 하루 종일 하품하[면서도]" 기다린다. 세상은 신호등을 따르듯 나름의 규칙을 따라 흘러가나 믿음을 품은 우체통은 움직이지 않는다. 믿음은 세상의 일반적인 질서를 따르지 않는다. "잠시 머물다 떠나는" 것이 세상의 질서이더라도 믿음은 "플라타너스 그늘 아래/ 하루 종일 하품하[면서도]" 그 자리에 서 있게 한다. 비록 권태가 밀려오더라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과연, 소망은 믿음의 표시이고, 기다림은 소망의 증거이다.

한편, 소망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일을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믿게 한다. 그래서 기다리는 자는 이미 그 순간에 도달해 있다. 아직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누구에게나/ 아직 받고 싶은/ 편지 한 통쯤은 있어/ 빨간 우체통 거기 서 있다." 여기서 "누구에게나"는 불명의 수취인이다. 수취인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나 "그래도" 우체통은 편지 한 통이 도착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 믿음이 풍상과 권태로 약해질 수 있어도 우체통의 색깔이 암시하듯이 우체통은 소통이 이루어진 순간을 미리 살고 있다. 빨간 열정으로 이미 불타고 있다. 소망은 미래를 현실화한다.

그렇다면, 계속 기다리게 하는 힘은 "그래도"에서 나온다. 풍상과 권태는 소망을 쇠잔하게 할 합리적인 압력이다. 현실이 "모서리는 허옇게/ 빛도 바랜 채" "하루 종일 하품하며" 시간만 보내게 한다면 소망을 접는 것이 논리적이다. "그래도" 그 소망이 확고한 믿음 위에 서 있다면 풍상과 권태는 꿈을 발효시킨다. "그래도"에 실려 있는 확신이 소망을 실현하는 힘이다. 『천로역정』에서 크리스천과 천신만고 끝에 순례의 최종 목적지인 천국의 문까지 동행한 자가 소망(Hope)이었다. 소망을 품고 결실을 기다릴 때 소망이 발효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다림은 발효의 시간이다. 풍상과 권태의 압박 아래서 소망이 믿음을 키우고 실체적 증거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아직 오지 않은 편지 한 통에 대한 기대가 우체통으로 하여금 기다리게 했으므로 그 편지는 소망의 종자(種子)이다. 종자 속에 있는 그 존재의 형상에 대한 기대가 풍상과 권태의 압력을 견디며 발아와 생장의 기회를 도모하게 한다. 기다림이 그 기대를 발효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실을 얻고자 하는 자는 풍상과 권태가 절망을 유혹하더라도 견뎌야 한다. 그것이 막연함의 조건을 해소하는 길이다. 결실이 언제 이루어질지를 예측하지 못하는 데다 예측한들 그 적절성을 장담하지 못하는 막연함에 대해 기다림은 실존주의적 대응에 해당한다.

신앙생활에서도 기다림이 믿음을 견고하게 하며 결국 꿈을 이루게 한다. 신앙인들의 존재의 이유를 확인시키는 것이 소망인 것이다. 바울 사도는 소망이란 아직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증거이므로 그것을 볼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한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로마서 8:24-25). 바란다면 기다려야 한다.

한편, 우체통은 하나님일 수 있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자녀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을 그대로 반영한다. 그분은 매일 기대가 배반당하더라도 기다리신다. 그것은 결국에 자녀가 돌아와서 소통의 단절을 허물고 화목하게 지낼 순간을 위한 것이다. 그 순간이 언제일지 알 수 없으나 "그래도 누구에게나/ 아직 받고 싶은/ 편지 한 통쯤은 있어/ 빨간 우체통 거기 서 있다." 그리고 만일 하나님이 수취인이라면 그 우체통은 그분의 마음을 대변한다. 그 마음은 기다림으로 그 순간을 이미 살고 있다. 그것이 막연함을 견디는 동력이다. 그 동력이 하나님이 우리에 대해 품고 계신 소망과 우리의 소망을 만나게 한다.

※성경을 읽을 때 "자세히 보아야/ 예[쁜]" 성품을 찾을 수 있다. "오래 보아야/ [자신이] 사랑스[러운]" 존재임을 알게 된다. 이로써 우리는 말씀의 생명력을 확인할 수 있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은 이처럼 성경 읽기의 과정을 형상화한 듯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시의 형상화 기능을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과정에 적용하면 그 말씀의 의미를 형상으로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소박한 논리를 따라 의미의 형상화 작업에 시와 하나님의 말씀을 결부해보았다. 글쓴이는 반포소망교회에 시무하는 이인기 목사다. 매주 한편의 시를 다룰 예정이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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