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와 묵상] 담장 고치기

이인기 목사(반포소망교회)

담장 고치기

                                                                                                                                   로버트 프로스트 (Robert Frost)

무언가 담장을 좋아하지 않는 게 있어,

그것이 담장 밑의 언 땅을 부풀어 오르게 하고

윗돌들을 햇빛 아래 굴러떨어지게 한다;

그러고는 두 사람이 나란히 지나갈 만한 틈을 만든다.

사냥꾼들이 그렇게 하기도 한다: 나는 그들이 지나간 뒤에

그들이 돌 위에 돌을 하나도 남겨놓지 않은 곳을 수리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토끼를 그 숨은 곳에서 내몰아

짖어대는 개들을 즐겁게 해주려 했을 것이다. 내가 지금 말하는 틈은

누가 만들었는지 보지도 듣지도 못했지만

봄철에 수리할 때가 되면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는 틈이다.

나는 언덕 너머에 사는 이웃에게 알리고

한 날에 만나서 그 담벼락 선을 따라 걸으며

우리 사이에 다시 담장을 쌓아올린다.

걸으면서 우리 사이의 담장을 수리해 가는 것이다

각자에게로 떨어진 돌들을 각자가 주워 올리면서.

어떤 돌들은 빵 덩어리 같고 어떤 것은 거의 공 같아서

우리는 그것들이 균형을 잡도록 주문을 외워야 한다:

"우리가 돌아설 때까지 그대로 있어랏!"

돌을 만지느라 손가락들이 거칠어진다.

아, 양쪽에 한 사람씩 서서 하는

야외놀이 같은 거지. 그런 정도로만 하면 되는데:

게다가 거기는 담장이 필요하지도 않는 곳이다:

이웃집은 전부 소나무이고 내 집은 사과나무 과수원이니까.

내 사과나무가 건너가서

당신 소나무 아래 솔방울들을 먹지는 않을 겁니다. 내가 그에게 말한다.

그러자 그는 그저 "담을 잘 쌓아야 좋은 이웃이 되지요"라고 말한다.

봄은 나를 짓궂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의 마음속에

이런 생각을 불어넣어볼까 생각한다:

"왜 그것들이 좋은 이웃이 되게 하지요? 그 말은

소들이 있는 곳에나 해당하지 않을까요? 여기는 소가 없소.

나도 담장을 쌓기 전에 알아보았소

내가 담장으로 무엇을 가두고 무엇을 막으려는지를

그리고 내가 누구를, 말하자면, 불쾌하게 할 수 있는지를.

무언가 담장을 좋아하지 않는 게 있어

그게 담장을 무너뜨리고 싶어 하지요." 나는 그게 "요정들"이라고

말하려 했지만 정확히 말해 요정들은 아니니까, 나는

그가 스스로 그렇게 말했으면 하고 바랐다. 나는 그가 거기서

구석기 시대의 무장한 야만인처럼

양손에 돌머리를 거머쥐고 옮기는 것을 본다.

내가 보기엔 그는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것 같다

숲의 그늘이나 나무의 그림자 속이 아니라.

그는 자기 아버지의 가르침을 거스르지 않을 것이며

자신이 그것을 아주 잘 생각해낸 것을 좋아하고 있다

그는 다시 말한다, "담을 잘 쌓아야 좋은 이웃이 된답니다."

시인(1874-1963)은 봄날 허물어진 담장을 이웃과 함께 수리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그는 담장이 허물어진 원인을 특정할 수가 없어서 "무언가 담장을 좋아하지 않는 게 있어" 허물었다고 생각한다. 이웃과 함께 수리하면서, 그는 "돌을 만지느라 손가락들이 거칠어[지고]" 힘들기도 한 한편으로, 담장을 세울 뚜렷한 이유도 없다는 생각에 이웃을 설득하고자 한다. 소를 키우고 있다면 몰라도 소나무 숲과 사과나무만 있는 곳이므로 굳이 담장을 둘 이유가 없기도 했다. 그래서 담장이 허물어진 원인이 아마 요정들 때문일 것이라고 말하려고도 했다. 원인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는 뜻인데, 그런 일 때문에 이런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려 한 것이다. 이런 생각을 계속 이어가는 것을 보니까 담장을 좋아하지 않는 무언가는 다름 아닌 시인 자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웃은 "구석기 시대의 무장한 야만인처럼" 묵묵히 담장을 수리하고 있다. 그는 "담을 잘 쌓아야 좋은 이웃이 된답니다"라고 대꾸할 뿐이다. 시인에게 그는 마치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무지몽매한 사람이며 "자기 아버지의 가르침을 거스르지 않을" 전통적인 사고에 매여 있는 사람처럼 비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와 함께 계속 담장을 고친다.

시의 제목이 <담장 고치기>이지만 우리는 일상 속에서 담장을 허물어버리고 싶은 명분이나 이유를 많이 접한다. 구속과 폐쇄로부터의 자유와 해방은 어느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 명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담장이 있으면 현실적으로 불편하지 않은가? 시인도 표면적으로는 이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는 이웃을 설득하면서도 "그 담벼락 선을 따라 걸으며/ 우리 사이에 다시 담장을 쌓아올[렸다.]" 이웃의 결연한 태도로 짐작하건대, 아마도 "각자에게로 떨어진 돌들을 각자가 주워 올리면서" 담장의 끝부분까지 수리를 완결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인은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이웃의 말에 사실상 동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담을 잘 쌓아야 좋은 이웃이 된답니다"라는 말은 시인이 이웃의 입을 빌어서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말이 된다. 담장을 고치는 일은 무지몽매하지도, 전통에만 매여 있는 태도도 아니라고 암시하는 것이다.

이 시는 담장이 실제로는 이웃과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웃과의 평화를 위해서 담장을 쌓아야 하는 것이다. 모순되게 들린다. 담장을 튼튼하게 쌓는데 어떻게 이웃과의 관계가 돈독해질 수 있는가? 사람들 사이의 적절한 거리가 관계의 지속성을 보장한다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담장을 쌓을 때는 시인이 시도했듯이 "내가 담장으로 무엇을 가두고 무엇을 막으려는지를/ 그리고 내가 누구를, 말하자면, 불쾌하게 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게 된다. 그래야 다른 사람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나도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우리가 우리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지킬 때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좋게 되는 것이다. 담장의 역설이다. 그렇다면, 담장은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히 인식하는 상태를 상징한다.

정체성의 담장이 허물어지면 그의 인생에는 얼굴을 알지 못하는 "사냥꾼들이" 토끼를 내몰며 들락거리고 "사과나무가 건너가서/ 당신 소나무 아래 솔방울들을 먹[으며]" 소가 마치 개활지를 누비듯이 돌아다니는 일이 벌어진다. 정체성을 잃으면 혼란이 닥치는 것이다. 인생의 방향성을 상실하여 진공상태와 같아진다. 인간에게 이러한 방향 부재는 공포이다. 환한 대낮에 사막 한 가운데서 방향을 알지 못한 채 서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오늘날 자유주의, 인본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등이 관념이나 제도의 담장을 허물며 사회 내에 엔트로피 지수를 높인 경우를 연상시킨다. 그 사조들은 기존의 관념이나 제도가 시대를 거슬러 구속적이며 폐쇄적이라고 비판하지만, 담장을 허문 뒤의 해방만을 강조했지 그 자유를 어떻게 유지할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는다. 아마도 알려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그 자체가 새로운 담장을 세우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주장의 이후는 역사의 흐름에 맡길 일이다. 그들이 초래한 무질서에 대해 책임을 방기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렇게 비판만 한다면, 그것은 역사의 흐름을 저지하려는 시도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판의 촉각이 둔해지지 않는 지점은 보다 본질적으로 우리가 허물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허물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상관한다.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역사의 흐름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정체성의 담장을 수리하게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 일은 폐쇄의 지향으로 비칠 수 있다. 물론, 폐쇄성의 인상을 완화할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담장이 허물어져서 시인이 이웃과 대화하게 되었듯이 그 허물어진 틈이 상징하는 통로, 즉 대문을 열면 된다. 정체성의 담장에 난 대문을 통해서 소통하는 것이다. 담장이 허물어져서 이웃에게 연락할 때 시인도 대문을 통하지 않았겠는가? 그렇게 할 때, 소통의 필요가 증가하여 쇄도하면 대문을 더 활짝 열면 된다. 대문에서는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점검할 수 있기 때문에 정체성을 흐리는 일을 예방할 수 있다. 이사야서에 이런 노래가 나온다.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을 성벽과 외벽으로 삼으시리로다/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나라가 들어오게 할지어다"(이사야 26:1-2). 견고한 벽이 구원을 담보하므로 문을 통해 의로운 정보를 소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담장은 고치고 대문을 열어야 한다. 이것이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역사의 흐름에 대처하는 올바른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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