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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묵상] 나는 좌절하는 것들이 좋다

나는 좌절하는 것들이 좋다 

                                                                                                                                           김경미

함박눈 못 된 진눈깨비와

목련꽃 못 된 밥풀꽃과

오지 않는 전화와 깨진 적금,

나를 지나쳐 다른 주소로 가는 그대 편지

나는 좌절하는 자세가 좋다

바닥에 이마를 대고

유리창처럼 투명하게

뿌리의 세계를 들여다본 것들

마치 하늘에 엎드려 굽어내려보는 신 같은

시인(1959- )은 좌절의 역설을 읊고 있다. 시의 제목부터 역설적이다. "나는 좌절하는 것들이 좋다." 제목만으로는 마조히즘이나 데카당티즘의 기미가 엿보이지만, 본질적으로 말해서, '좌절'과 '좋다'는 그 의미가 상반된 지향을 가진 말들이다. 그 모순되는 개념들을 엮어서 하나의 명제로 구성하기 위해서는 변증법적인 융화의 계기가 필요하다. 그 계기는 "좌절하는 것들"이 보이는 자세이다. 그녀는 그 자세에 주목함으로써 의미상의 모순을 융화한다. "좌절하는 것들"에게서 "뿌리의 세계를 들여다본" 자세를 발견하고서 그녀는 "나는 좌절하는 자세가 좋다"고 언명한다. 이처럼 역설은 현상적 모순 때문에 해석상 긴장을 형성하나 그 이면의 심층적 의미를 포착하게 한다. 그녀는 그 역설적 의미를 종교적으로까지 승화하여 이해하고 있다.

사람들은 언제 좌절하는가? 여러 경우가 있을 수 있으나 좌절의 가장 현실적인 동기는 비교이다. 물론, 이때의 비교는 우월한 대상과의 격차를 전제한다. 명백히 독립적인 개체로서 고유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일단 비교되면 열등성의 피막(被膜)이 그 정체성을 둘러싼다. 진눈깨비는 비와 눈이 섞이게 되는 기후 조건에서만 형성된다. 그럼에도 함박눈과 비교하면 덜 발달한 현상으로 비친다. 밥풀꽃은 순수한 아이보리 빛깔의 아기자기한 꽃망울들로 상상적 포만감을 선사한다. 그러나 목련꽃에 비기면 우아하거나 고급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이런 판단은 서로를 다른 개체로서 나름의 독특성을 지닌 존재로 간주하지 않고 우월해 보이는 상태에로 "못 된" 단계에 어느 한쪽이 머물러 있다고 보는 것이다. 비교의 대상처럼 '되지 못했다'는 열등감은 자신을 미성숙과 결핍의 존재로 재단하게 한다.

"오지 않는 전화"는 기대를 좌절시킨다. 내가 원하는 때에 전화가 와야 하는 법은 없지만, 영구히 오지 않는다면 소통이 단절된 것이다. 그리고 "깨진 적금" 또한 미래를 위한 준비가 중단된 상황이다. "나를 지나쳐 다른 주소로 가는 그대 편지"는 실수일 수 있지만 사실상 실수해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므로 관계의 전망을 어둡게 한다. 이 모두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와 비교되는 상황이다. 전화하지 못할 사정이 있을 수 있고, 현재의 긴급한 필요에 그 적금이 요긴하게 사용되었을 수 있으며, "그대"가 그 편지의 수신인을 아예 다른 사람으로 지정했을 수 있기는 해도, 자신에게 마땅하지 않은 것을 기대했음을 후회하게 하는 순간이다. 그 순간은 마치 자기가 잘못한 것인 양 움츠러들게 한다.

미성숙과 결핍, 그리고 마땅하지 않은 기대의 후회는 좌절을 불러올 충분한 이유이다. 이와 같은 비교는 공간과 시간을 불문하므로 동시대적 현장뿐만 아니라 미래 혹은 과거의 상황도 소환할 수 있다. 언제 어디서든 비교되므로 좌절도 일상화된다. 이때 주어지는 도덕적인 교훈은 개체의 고유성을 견지하려는 의지와 긍정적 사고 습관으로 좌절을 극복하라는 것이겠지만, 그러한 의지의 발현이 보편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좌절이 불가피한 수순일 수 있다.

좌절이 불가피한 수순이라면 시인은 비관주의적 세계관을 용납하는가? 이 의문에 대한 답은 "나는 좌절하는 자세가 좋다"이다. 그 자세는 좌절의 조건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발견하는 마음가짐을 가리킨다. "좌절하는 것들"은 "바닥에 이마를 대고/ 유리창처럼 투명하게/ 뿌리의 세계를 들여다본 것들"이다. "바닥"은 사람이나 개체마다 다르기 때문에 객관적인 기준을 설정할 수 없지만, 좌절의 순간을 바닥이라고 잠정할 수는 있다. 그 순간에 이마를 대는 것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태도이다. 자신의 바닥을 자신이 확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변명이나 합리화의 경로를 거치지 않고 "유리창처럼 투명하게" 바닥의 현황에 주목한다. 그녀가 좋아하는 것은 바로 이런 자세이다.

굳이 바닥을 딛고 일어서려는 의지를 표명하지 않아도 좋다. 좌절의 순간에 자신의 한계를 고찰하는 것만으로도 좋다. 왜냐하면, 한계라고 해서 반드시 부정적인 양상을 염두에 둘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 한계는 다른 말로 하면 자신의 본질적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이므로 자기의 정체성과도 같다. 진눈깨비는 함박눈이 "못 된" 좌절의 순간에 자신이 진눈깨비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즉, 함박눈이라 하더라도 진눈깨비가 될 수 없는 자기만의 고유한 정체성이 바로 그 한계이다. 비와 눈이 섞이게 된 것은 미성숙의 표시가 아니라 온화한 기후의 전조일 수 있기 때문에, 그로써 열등성의 굴레를 뒤집어씌울 필요는 없다.

물론, 그런 경우에 자기만족적 합리화의 우려가 있을 수 있다. 그런 우려는 "바닥에 이마를 대고/ 유리창처럼 투명하게/ 뿌리의 세계를 들여다본 것들"과는 연관 짓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뿌리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은 "마치 하늘에 엎드려 굽어내려보는 신 같은" 자세이기 때문이다. 그 자세에서 종교적 심상을 연상하는 것은 그것이 그만큼 거룩하기 때문이다. "좌절하는 것들"이 하늘에 대한 땅의 열등성을 반영하기는 해도, 오히려 땅의 한계에서 하늘의 가능성을 발견하므로 좌절은 초월의 순간이기도 하다. 좌절의 순간에 신의 모습을 보는 것이 역설적이지만, 사실상 그 순간은 신의 임재, 즉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깊은 각성을 불러온다. 하늘이 엎드려 굽어내려보는 공감의 순간이다.

그처럼 좌절의 자세가 좋은 인물로서 다윗을 거론할 수 있다. 그는 그토록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자 노력했던 자신이 어느 순간에 완전히 타락해버린 것을 깨닫고 자신의 죄성에 대해 좌절했다. 음욕에 눈이 멀어 한순간에 사통과 살인을 저질러버렸으니 그동안 그를 지탱했던 신실한 믿음은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인가? 믿음에 관한 한, 자신의 과거에 비해 현재가 더 열등했다. 그는 "바닥에 이마를 대고" 그 열등성의 뿌리를 들여다본 뒤 자신이 죄성을 타고났음을 고백했다.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편 51:5). 이 같은 자신의 본질에 대한 자각은 그가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음을 알린다. 이어지는 호소에서 그 깨달음을 암시한다.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시편 51:6). 하나님은 인간이 진실한 마음을 갖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좌절의 순간에 하늘의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신다. 그 가르침이 은밀한 이유는 마음의 중심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범해서 좌절의 나락에 떨어지더라도 그 자리에서 "바닥에 이마를 대고/ 유리창처럼 투명하게/ 뿌리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하늘에 엎드려 굽어내려보[신다]." 진실한 회개에는 하늘도 공명한다.

※성경을 읽을 때 "자세히 보아야/ 예[쁜]" 성품을 찾을 수 있다. "오래 보아야/ [자신이] 사랑스[러운]" 존재임을 알게 된다. 이로써 우리는 말씀의 생명력을 확인할 수 있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은 이처럼 성경 읽기의 과정을 형상화한 듯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시의 형상화 기능을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과정에 적용하면 그 말씀의 의미를 형상으로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소박한 논리를 따라 의미의 형상화 작업에 시와 하나님의 말씀을 결부해보았다. 글쓴이는 반포소망교회에 시무하는 이인기 목사다. 매주 한편의 시를 다룰 예정이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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